▲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

자동차의 목적은 운송이다. 구소련에서는 이 명제가 충실히 이행되었다. 몇 종의 자동차가 변화 없이 40~50년 생산되고 이용되었다. 자본주의 나라의 여러 자동차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구소련 자동차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가 있으면 그만이었다. 1990년대 초 우크라이나에 도착해 보니 자동차는 거의 라다(Lada) 지굴리(Zhiguli) 볼가(Volga)라는 구소련 시대 오래된 차였다.

라다와 지굴리는 1967년 생산되기 시작하여 2012년 단종 될 때까지 3000만 대가 넘게 생산되어 구소련 공화국과 동유럽에 퍼졌다. 아직도 중앙아시아나 우크라이나 시골에는 이 자동차가 다닌다. 그 위 고급 자동차가 볼가이다. 볼가는 1956년 생산되기 시작하여 2010년에 단종되었는데 부의 상징이자 권위주의를 대표하는 차였다. 이 차들은 아직도 부속품이 넘쳐나고 차주들은 자가 정비 및 수리를 한다.

구소련권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자동차를 한두 번은 이용했거나 봤으리라. 지금은 한국에서 선생을 하는 친구는 모스크바에서 볼가 자동차를 몇 년간 몰았는데 자기를 자동차 정비공이라고 얘기했다. 한국에서는 10년 이상 타는 차가 많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10~20년 된 차는 보통이다.

2000년 애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차가 필요하여 알아보니 우크라이나에서 생산하는 자동차가 있었다. 이름은 타부리아(Tavria), 가격은 새 차가 2000달러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싫어하는 차, 자전거보다 못한 차, 공장에서 사서 집으로 오는 중간에 고장 나는 차, 온갖 냉대와 업신여김을 당하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니 한국사람이라도 좋아해 보자고 얘기했지만, 사실 돈이 부족해서 그 차를 샀다.

우크라이나 한국 교민 중에서 최초로 타부리아 차를 타고 당당하게 몰았다. 그리고 '천마'라는 거창한 이름 붙이고 차 좋다고 여러 사람에게 자랑하며 다녔다. 몇 개월 후 고장이 나기 전까지는 별 불편함을 몰랐다. 그런데 날이 추워지고 차를 밖에 세우니 시동이 안 걸리고 여기저기 액체와 기름이 새고 소리가 나서 고치기 시작했다. 동네 차고에 가면 타부리아 차를 쉽게 고치는 친구가 있어 당시 우리 돈 1000~2000 원 주고 차를 고치며 자동차 수리를 배워 필자도 거의 자동차 수리공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천마를 타고(282-65KH 아직도 차 번호를 기억한다), 지금은 러시아가 강점하고 있는 크림반도의 대학 휴양소와 얄타, 세바스토폴 등 우크라이나 전역을 돌아다녔다. 당시만 해도 기름값이 싸서 주유할 때마다 꽉꽉 채웠다. 그렇게 4년간 10만㎞쯤 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고장 나서 새 차를 사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국이 많지는 않다. 약 25개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데 우크라이나는 공장을 닫았고 벨라루스나 북한같이 소량을 생산하고 자동차 부품을 수입하여 성능 낮은 자동차를 조립 생산하는 나라를 제외하면 세계자동차는 미국 일본 독일 한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여러 회사가 인수합병을 하여 스웨덴 볼보나 루마니아 다시아, 체코의 슈코다 같은 명차들이 통폐합되었다. 중국과 인도도 자동차 생산을 하지만 유럽에서는 질이 낮은 자동차로 인식이 안 좋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독일차와 일본차 선호도가 높고 이제는 한국차도 점차 좋은 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키이우는 요즘 자국 생산 차량이 없다 보니 세계 자동차 전시장 같다. 거리에는 라다, 지굴리는 거의 멸종되었고 고급외제자동차가 즐비하다. 우리는 타부리아 차를 1000달러에 팔고 고민 끝에 중저가 소형차인 르노 심볼을 사서 20여년간 30만㎞쯤 탔다. 요즘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