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br>
▲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창영초등학교 운동장과 골목길, 헌책방의 모습이 여전하고, 33년간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에 재직하며 출근길에 배다리를 들어서는 마음은 늘 행복했다.

배다리를 따라 우각로를 걷다 보면 중간 즈음에 영화학원(영화초, 영화국제관광고)이 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단아하지만, 오랜 세월만큼 뚝심 있게 서 있는 붉은 벽돌의 건축물이 보인다. 이곳이 대한민국 근대 교육의 역사를 품은 교육의 시발점이다.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영화학당의 '존스관'이라는 교사(校舍)는 1892년 개교한 영화학당의 역사와 대한민국 근대교육의 시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존스관은 1911년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세워졌다. 싸리재에 있던 교사의 매각 대금과 미국의 목재 사업가 콜린스의 기부금 1000 달러, 그리고 인천지역 여성 신도들이 삯바느질로 모은 헌금이 모여 건립되었다. 외부는 적벽돌로 마룻바닥은 백두산 적송(赤松)을 공수하여 만들었는데 당시 경복궁 증축으로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의 소나무 사용으로 자재 공급이 어려워 백두산 적송이 사용되었다.

존스관은 영화학당의 역사보다 20년 가까이 늦지만, 영화학당의 건학이념과 역사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2018년 학교장으로 임명되어 30여년간 재직하며 늘 보았던 존스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학원의 정체성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존스관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고, 존스관을 대형 그림으로 표현하여 보존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었다. 그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번이 시도는 성사되지 않았고, 2022년말 한 작가의 조건 없는 헌신으로 실현되어 14개월의 작업 끝에 120호 존스관 작품이 132주년 개교기념일에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학당은 1892년 설립된 대한민국 근대 초등교육의 기원이다. 비슷한 시기에 세워져 중등교육 기관의 기원이 된 서울의 배재학당(1885), 경신학당(1885), 이화학당(1886) 등과 비슷한 연혁과 건학 스토리를 가진 인천의 보배로운 교육 문화유산이다.

지난 14개월간 존스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어렵게 진행하면서 영화학당과 존스관이 인천에서조차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서울의 이화학당, 배재학당과 비슷한 연혁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학당과 존스관은 인천시민도 인지하는 수는 미비하였다. 영화학당과 존스관의 자원을 활용한 홍보와 교육 등의 노력은 여러 시민 단체나 학교 안에서 있었지만, 확장성과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인천은 한양을 지근거리에 두고 바닷길을 가진 지리적 환경으로 우리나라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많은 분야에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인천은 근대교육 도입기의 역사와 자산을 많이 가졌다. 그럼에도 인천은 교육도시 이미지와 거리가 먼 도시 이미지로 살고 있었다.

2018년부터 염원해 온 존스관 그림이 120호 그림을 진행하며, 인천에는 인천의 자부심이 될 수 있는 '영화학당'의 가치의 재해석 필요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근대교육 발상지인 인천의 많은 교육 문화유산들이 무관심 속에 잠자고, 유실되는 현실도 발견하였다. 영화학당과 존스관을 시작으로 산재 된 인천 근대교육 역사의 자료 발굴과 보존 및 활용 체계의 수립이 시급해 보인다. 이 과제는 단위 학교의 범위를 벗어나 인천 사회의 책무와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천시가 중심이 되어 전문가 용역과 예산이 투입되어 잠자고 있는 교육문화 유산이 깨워지고, 유실된 유산들이 복구되는 일들이 체계적이며, 지속해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 구(舊)자를 쓴 구도심(舊都心)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는 인천 근대 교육 발상지 이미지와 자원들이 재해석되고 이제는 체계적으로 발굴, 복원되는 일을 통해 인천이 교육의 뿌리가 있는 교육도시 이미지로 재평가되기를 소망한다.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