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지금은 흔치 않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전국 곳곳에 이른바 '달동네'가 나름 번창했다. 산등성이에 집을 짓고 사는 동네를 가리키는데, 비교적 높은 데 위치하면서 달과 가깝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달동네는 대개 싼 땅값을 빌미로 통행이 어려운 비탈에 주로 세워졌다. 1960~70년대 산업화로 인해 빈부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돈 없는 영세민들은 달동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교통 접근성은 취약했다. 자연스럽게 저렴한 땅값은 달동네를 형성하게끔 했다.

인천에도 대표적인 달동네가 있었다. 동구 송현동 일대 수도국산(水道局山)이다. 이 곳의 본디 이름은 송림산(松林山)으로, 주변을 매립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사뭇 달라졌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한적한 바닷가 소나무 언덕이었다. 수도국산이란 명칭은 구한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인천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면서 생겨났다. 일제가 인천과 한강의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를 벌인 뒤 원수를 담아둔 곳이 수도국산이었다.

여기엔 개항(1883년) 후 현 중구 쪽에서 일본인에게 쫓겨난 조선인들이 모여 살면서부터 동네를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이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이북에서 피란을 온 이들이 대거 몰렸다. 이렇듯 수도국산은 개항과 함께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인천인들에게 마치 정겨운 고향과 같은 이미지로 남게 됐다. 하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어 나라 안에서도 알아주는 달동네로 꼽혔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각종 개발로 달동네는 점차 없어졌다.

그러자 동구청은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수도국산 달동네 삶의 흔적을 되살리기 위해 그 터에 박물관을 건립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달동네 서민들의 평범한 삶을 주제로 삼았다. 국내 박물관 역사에서 이례적인 일로 평가를 받는다. 2005년 개관한 박물관은1960∼70년대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특징도 갖는다. 기성세대들에겐 향수를, 젊은이들에겐 우리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이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내년까지 달라진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낡아 정비가 필요해서다. 동구는 새로운 전시 공간과 공공 편의시설 등을 포함해 지상 3층에 연면적 3640㎡로 증축할 예정이다. 박물관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엔 기존 전시실을 확대해 상설·기증·아카이브 전시실을 짓는다. 이렇게 새로 거듭날 박물관에 대해 시민들은 큰 기대를 한다. 지역의 역량을 결집해 문화발전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으면 싶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