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올해는 가히 '슈퍼 선거의 해'이다. 1월 초 인구 1억7000만명의 방글라데시 총선부터 11월5일 미국 대선까지 세계 76개국에서 큰 선거가 치러진다. 투표소를 찾을 유권자만 40억 명이 넘는다. 우리도 오는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 내년엔 세계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뀔지가 벌써 궁금하다. 3월 이란 총선이나 러시아 대선, 4월 인도 총선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6월 초 유럽의회 선거는 급변하는 유럽 정세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일본도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총재의 임기 만료로 9월엔 선거를 치러야 한다. 11월5일의 미국 대선은 슈퍼 선거의 해를 마무리하는 글로벌 이슈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컴백이 이뤄질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는 곧 민심인데 그 민심을 비틀고 왜곡하면서 선거판을 망치는 복병이 나타났다. 당초부터 우려가 컸지만 이젠 현실이 돼버렸다. 바로 딥페이크(deepfake)의 등장이다. 이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후보자 얼굴에 음성이나 영상을 합성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악한 수준이던 것이 이제는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매우 정교한 수준까지 왔다. 각종 선거정치를 혼탁하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복병이 나타난 셈이다. 첨단기술이 선거정치를 공격하는 모양새라 하겠다.

미국은 이미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당원들에게 뉴햄프셔의 첫 프라이머리에 '투표 거부'를 독려하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전화 내용도 뜬금없지만, 전화를 받은 당원들은 실제로 투표를 거부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딥페이크'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가짜 목소리'가 당원과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것이다. 사태가 확산하자 사법당국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인터넷이 아닌 전화로 전달되는 딥페이크 메시지는 추적도 어렵다고 한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우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대선에선 이미 'AI 후보'를 만나봤다. 그 직후 실시된 6월 지방선거에서는 현실화된 딥페이크의 위험성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번 4월 총선이 결정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다. 훨씬 더 정교해진 딥페이크가 여론을 왜곡, 조작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법을 개정해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벌칙 조항도 마련됐다. 게다가 선관위의 감시 및 대응 기능도 대폭 강화됐다. 선관위가 총력을 쏟아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로 모두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역시 민주주의의 요체인 시민의식이 더 절실해 보인다. 가짜를 몰아내고 진짜를 구별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보다 근본적인 처방책이 아닐까 싶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