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독일에서는 월 49유로(우리 돈 약 7만1000원)에 전국 대중교통 수단 대부분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서울의 '기후동행카드', 경기도의 'The 경기패스', 국토교통부의 'The 패스'로 나뉘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인다. 서울시가 명칭만 '기후동행'이지, 실질적 탄소저감 효과는 크게 떨어지는, 서울중심 요금체계를 들고나와서 벌어진 일이다. 당장 이달 27일부터 기후동행카드가 시범실시에 들어간다.

독일 49유로 티켓은 2022년 한시적으로 시행되었던 9유로 티켓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9유로 티켓은 치열한 정책경쟁과 정치적 협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빚어진 유럽 에너지 공급망 붕괴로 독일은 직격타를 맞았다.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자 보수정당들은 휘발유 가격 정부보조를 강하게 주장한 반면 녹색당은 기후위기를 내세우며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녹색당은 사회민주당(빨강), 자유민주당(노랑)과 더불어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구성하는 한 축이다.

돌파구는 자민당 소속인 교통장관이 월 9유로(1만3000원)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토록 하는 정책을 한시적으로 시행하자고 제안하면서 열렸다. 대중교통을 장려하는 녹색당은 이 안을 받아들였다. 사민당 소속 총리 올라프 숄츠도 '9유로 티켓'에 동의하면서, 이 정책은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9유로 티켓이 520만장(인구 대비 63%)이나 팔렸다. 가까운 거리도 승용차로 이동하다가 대중교통으로 바꾼 시민이 20%가량 늘었다. 이에 힘입어 2023년 5월 49유로 티켓이 도입되었다.

49유로 티켓으로 탄소배출이 연간 700만t 저감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의 탄소배출효과는 고작 연 3만2000t(독일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기후동행카드의 효과가 미미한 이유는 다시 강조하지만 경기도를 제외한 탓이다. 의견이 맞지 않아 서울만 시행하기로 한 게 아니라 애초에 경기도에는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뒤늦게 개별로 끌어들이려 했던 경기도 9개 시 가운데 대부분이 기후동행카드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지역 시민들이 얻을 혜택은 미미한 반면 예산부담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합리적인 제안과 정치적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The 패스'와 'THe 경기패스 시행'이 오는 5월이니, 아직도 시간은 남았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