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사상과 활동이다. 이는 대다수 국민의 요구나 압력에 영합하는 것으로서, 국민 의사를 존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민주주의는 국민 의사를 존중하는 정치체제이다. 하지만 존중과 영합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되, 다양한 견해를 가진 국민의 뜻에 접근하기 위해 토론과 비판 과정에 의존한다. 이에 반해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적인 정치인이 국민이 환영할 만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공약으로 제시하여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포퓰리즘은 정치공학적 계산과 술수에 유능한 사람들이 애용하는 정치전략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권력 획득과 기득권 연장·유지다. 정책의 현실 타당성, 합리성, 중장기적 결과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들은 국민의 인기를 얻어 권력을 잡고 권좌를 지킬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을 팔아 무슨 일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포퓰리즘의 문제점은 정치적 무책임이다. 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정치인이 앞장서서 정책화하거나 프로그램화하고, 그것을 많은 국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꼴이니, 그것이 잘못될 경우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정책과 제도의 도입이나 시행과정에서 반대하는 소수가 있지만, 이들은 효과적으로 포퓰리즘을 저지하거나 책임을 물을 정치적 힘이 없다. 포퓰리즘의 무기는 선동이다. 선동이 잘 먹혀들게 하려면 이기적 욕망, 시기와 질투, 분노에 불을 붙이면 좋다. 포퓰리스트들의 선심성 정책은 달콤한 사탕과도 같다. 자기의 부담은 적어 보이고 이득은 크게만 보이니, 퍼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선심성 정책에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달콤함에 맛을 들여간다.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겠다는 국민의 힘 지도부는 총선에 이기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포퓰리스트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서울 초집중화로 인해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지방 소멸 등 많은 문제점을 양산해 왔다. 교육감들이 5년간 현금·복지성 지원 사업에 사용한 혈세가 총 3조5000억 원에 달하고, 무분별하게 공공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각종 이권 사업에 빨대를 꽂아 빛의 속도로 나랏빚을 늘렸던 문재인 정부 시절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던 여당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변화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조금씩 변화의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주역>에서는 그것을 '기미'라고 한다. 즉, 변화에는 낌새가 있다는 말이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때 민심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용산의 고위 관료들과 국민의 힘 수뇌부는 이 '기미'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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