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 징조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사소한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나무위키). 즉, 큰 사고는 우연히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반드시 일정 기간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는데 이런 징조를 사소한 것으로 방치할 때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위험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제기한 개념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함으로써 인간생활의 효율성, 편리성, 신속성 등이 높아졌지만, 반면에 위험과 재난의 대형화, 복합화, 글로벌화가 진행되어 위험사회로 치닫는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위험은 대부분 인재로서 위험의 과학화·상업화의 산물이다.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초기의 위험이나 재앙은 인간의 인위적 통제 밖의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페스트 등 질병 확산, 홍수·가뭄에 의한 농작물 피해, 자연적 발화에 의한 화재 등은 (일부는 인간의 개입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통제 밖 사건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재난과 위험은 위험의 과학화(원자력 발전, 오존 파괴 등)와 위험의 상업화(폭염 속에 대형 이벤트 등) 결과로서 인간의 통제 부재와 무능력, 불감증에서 발생한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두 원리, 하인리히 법칙과 위험사회론이 뭔가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느낌이 든다.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을 말해주고, 위험사회는 이태원 참사와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다. 얼마 전에 끝난 잼버리대회 파행은 준비가 부실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요즘 위험·재난의 규모와 잠재력이 커진 한국사회를 보면 두 가지 뚜렷한 징후가 감지된다. 첫째, 재난과 위험으로부터 예측 및 보호를 위한 전문가와 과학에 대한 불확실이 증가하고 믿음이 상실되었다(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둘째, 국가와 사회제도가 시민을 보호하는 능력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예: 세월호·이태원 참사). 그래서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이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게 필자만의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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