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의 작사가 존 하워드 페인은 평생 집이 없었다던가. 오페라 삽입곡으로 쓰였다는 '홈 스위트 홈'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도 북군도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집은 돌아갈 수 없을 때 더 그립고 간절하게 생각나는 법이다. 하여 '스위트 홈(sweet home)'은 반어법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은 집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폐암 말기에 접어든 주인공은 폐가를 사들여 생의 마지막 공간을 꾸미려고 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최초 기억 속의 집으로부터 '먼저 온 미래'의 집까지 넘나들며 집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낸다. 집에 대한 애착이 아니다. 주인공은 영혼이 가벼워지도록 모든 사랑마저 지상에 남기고 떠나려 하는 인물이다.
“비 오는 날 여기에 앉아 부추전을 만들어 먹었어. 텃밭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이 텃밭에서 부추를 가위로 잘라 와서. 어진이 물었다. 언제? 나는 대답했다. 미래의 어느 여름날. (중략) 이 집은 어디에 있어? 완치하리라는 희망보다 훨씬 단단한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제 우리가 찾아낼 거야.” 그가 '기억하는' 미래가 꼭 현실이 되었기를….
노래 '홈 스위트 홈'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년 작)에 삽입되면서라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캔자스에 몰아닥친 회오리바람으로 도로시의 집이 통째로 날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뇌를 갖고 싶어 하는 허수아비,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 사자와 동행이 되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지만 마법사는 사기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은구두를 세 번 두드려 집으로 돌아온 도로시가 외친다. “세상에 내 집만 한 곳은 없어!(There's no place like home!)” (노래 '홈 스위트 홈'의 마지막 구절.)
전세사기로 온통 흉흉하다. 사기범들 때문에 '스위트 홈'을 날리게 된 피해자가 벌써 수천 가구다. 절망한 피해자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단한 몸 뉘일 방 한 칸 간절히 원한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1960년대 말 강남 개발 때 처음 등장한 '떴다방'이 진화를 거듭하더니 급기야 그 일부가 기업형 사기범죄 조직으로 발전했다. 대부업체는 이 와중에도 경매를 진행하고, 이참에 한몫 잡으려는 경매꾼들마저 설친다. 그러나 투기를 방관하고, 심지어 조장한 혐의도 있는 정부의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아, 홈 스위트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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