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으로 과거 치유하자
▲ ★ 還(환)은 놀란(       경) 죄수가 누명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착) 글자다. /그림=소헌
▲ ★ 還(환)은 놀란( 경) 죄수가 누명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착) 글자다. /그림=소헌

“차도선 일당은 선성만 듣고 삼수읍을 불지르고 갑산읍으로 쳐들어가서 우편국을 무너뜨리고 풍산군으로 도피해 버렸다. 그래 토벌대가 삼수三水에 갔을 때는 그들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중략) 차도선 일파와는 따로 새 일파가 차차 머리를 쳐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들의 대장은 홍범도라는 사람이었다. 홍범도는 차도선이가 휩쓸고 지나간 삼수갑산三水甲山에서 사오백 명의 일당을 모아가지고 그 성세가 날로 뻗치기 시작하였다. 당시 홍범도의 소문은 충천할 듯이 굉장하였다.” 한설야 作 <탑>에서 발췌.

차도선(1863-1939)은 함경남도 갑산 출생으로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모아 산포대를 조직한 후 함남 북청의 후치령에서 일본군 중대 병력을 섬멸하였다. 이어 삼수·갑산·신흥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국권이 상실된 후 만주로 망명하여 청년항일단체인 포수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길림성 송화강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1995년 유해遺骸가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1868-1943)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갑산으로 이사한 후 사냥과 노동일을 하며 살았다. 1907년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에 맞서 의병부대를 만들었다. 그는 삼수와 갑산 등 산악지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1910년 을사늑약(勒約)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1920년 두만강 근처인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전멸시키는 쾌거를 올렸으니, 그때까지 독립군의 활약 중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다. 삼수와 갑산은 함경남도 북서쪽과 북동쪽에 있는 고장으로서 조선시대에 악명 높은 귀양지였다. 두 지역 모두 험한데다 춥고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곳이다. 매우 멀고 험난한 곳으로 가거나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광복절 오후, 이곳을 근거로 삼아 독립군을 이끌었던 홍 장군의 유해를 78년 만에 고국으로 받들어 모시게(봉환奉還) 되었다.

 

[받들다 / 바치다 / 녹봉]

① . (예쁠 봉)은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머릿결이며, 귀한 약초로 보기도 한다. ②奉(봉)의 부수는 大(대)인데 여기서는 (두 손으로 받들 공) 자로 썼다. ③두 손( )으로 예쁜( . ) 꽃다발을 선물하는 모습으로 奉(받들 봉)이 되었다. 약초( )로 보아 진상을 바친다는 뜻도 좋겠다. ④奉(봉)에 구체적으로 (손 수)를 또 넣어 捧(받들 봉)을 새로 만들었다.

[돌아오다 / 돌다]

①還(환)은 (놀라서 볼 경)과 (쉬엄쉬엄 갈 착)으로 나눌 수 있다. ②

(경)의 본자는 (경)이다. (그물 망)과 袁(옷이 치렁치렁할 원)이 합쳐졌다. ③간수가 다가가니( ) 목에 칼( )을 쓰고 있는 죄수가 옷(衣의)에 파묻은 얼굴(口)을 빼꼼히 열고 놀라며 바라보는 모습이다. 아마도 처형당할 것을 눈치챘을까? ④다행히 죄인은 누명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還鄕환향).

 

북쪽에서는 김일성의 항일행적과 비교되어 소외당했고, 남쪽에서는 반공에 걸려 배척당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으로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당겨오자. 민족끼리 이념을 극복하고 통일에 나서자. 그날이 오면, 유해가 대전 현충원에서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감으로써(還) 완성된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누락된 한자 표기는 인천일보 2021년 8월16일자 9면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