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인간 감옥에 갇혀 수난받는 '피조물들'
▲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중 마리가 당나귀 발타자르를 품에 안는 장면.

“여긴 참 추악해요! 죽기에 좋은 곳이에요. 아무 후회 없이…”

비를 피하려고 방앗간 주인집 안으로 들어온 마리는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내부를 보고는 혐오스러움에 치를 떤다. 그리고 돈밖에 모르는 지독한 구두쇠인 방앗간 주인의 추악함에 또 한 번 치를 떤다. 마리는 남자친구 게라르에게 버림받고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돈을 내밀며 자신을 절망의 끝으로 내몰려는 구두쇠 노인의 유혹을 뿌리치면서, 마리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1966)는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고된 노동과 학대로 수난당하는 당나귀 발타자르의 일대기를 통해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해 심오하게 고찰한 프랑스 거장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작품이다. 특히 영화 사상 유례없이 당나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물과 인간의 삶을 병치시키며 인간 감옥에 갇힌 피조물들의 동병상련의 운명을 조명한다.

▲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중 양떼들이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당나귀 발타자르를 에워싸는 장면.
▲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중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아기 당나귀의 모습.

'신의 섭리'를 등진 인간의 자유의지가 낳은 죄악

양떼들의 청량한 방울소리가 들리고 아기 당나귀가 어미 젖을 먹는 평화로운 정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어 어린 남매에 의해 아기 당나귀는 어미 곁을 떠나 평화롭던 들판에서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된다. 자크 남매로부터 '발타자르'라는 세례명을 받은 아기 당나귀는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크와 마리의 순결한 사랑을 지켜본다. 그러나 어른이 된 당나귀 발타자르는 인간들의 죄악으로 타락한 세상에 의해 불행으로 치닫는 마리의 운명과 같이 간다. 영화는 인간의 법을 따르는 인간계와 신의 법을 따르는 자연계를 비교하며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당나귀 발타자르와 마리의 고통과 수난의 근원을 파헤친다.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부이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 숙고하다가 정욕에 지배되어 신의 섭리와는 반대방향으로 치닫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바로 악행을 저지르는 원천임을 깨닫는다. 불완전한 인간의 법과는 달리 완전무결한 영원법 '신의 섭리' 안에서는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들 모두가 죄인이나 다름없다. 고의적인 죄이든, 무의식적인 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집단적인 의지로 만들어낸 인간 감옥에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이 인간 감옥에서 가장 고통받고 수난당하는 것은 발타자르와 마리같이 순결한 영혼들이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폭주족 건달 게라르, 주정뱅이 부랑자 아놀드, 지독한 구두쇠 노인 등 여러 주인을 거치며 고된 노동과 학대로 수난당한다. 그리고 마리도 한순간 악마의 화신 같은 게라르의 유혹에 넘어간 죄밖에 없으나 가혹한 비난과 모욕을 당한다. 결국 게라르에게 농락당하고 늙고 추악한 방앗간 주인의 손아귀에까지 가게 된 마리는 그 순간 지옥을 엿본다. 어둠 앞에서 흠칫 멈춰선 마리는 뒤돌아 저 멀리 보이는 빛을 응시한다. 그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간절한 의지로···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희망을 향한 발걸음은 게라르와 그 패거리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다. 한편 늙고 지친 당나귀 발타자르는 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되어 잠깐이나마 평온한 나날을 보내지만 게라르에 의해 밀수품 운반에 이용당하다가 총에 맞는다. 삶의 마지막 순간, 당나귀 발타자르는 신의 부름 같은 휘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드넓은 들판으로 나아간다. 양떼들에 의해 에워싸인 당나귀 발타자르는 어미 곁에서 젖을 먹던 행복한 순간으로 다시금 돌아간다. 그리고 이제야 기나긴 고행의 여정을 마치고 신의 부름 소리에 응답한다. 황량하고 메마른 인간 감옥에 육신의 껍데기만을 남긴 채···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인간에게 뭇 짐승들을 다스릴 지배권을 부여하셨다. 여기에는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이성과 자유의지로 인간이 공동창조자로서 지구상에 신의 지상천국을 완성하기를 바랐던 신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뜻과는 반대로 지구를 인간 감옥으로 탈바꿈시켜 신의 피조물들을 고통 속에 내몰고 있다. 인간을 향한 신의 부름은 외면한 채…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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