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배추 셀 때만 써도 족하다
▲ 나뭇잎을 떨구듯 죽은 아이(_/_)를 소쿠리(_)에 담아 버리는 글자 棄(기). /그림=소헌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 중에서도 높은 봉우리 14개를 ‘히말라야 14좌’라 한다. 이곳을 완등完登하면 최고로 영예로운 산악인이 된다. 현재 인류역사를 통틀어 43명이 있다. 김홍빈은 1991년 북아메리카의 최고봉 ‘데날리’를 등반하다가 고소증세와 탈진으로 의식을 잃고 심각한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는 열 손가락을 앗아간 산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산에서 얻은 장애를 산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1997년부터 2019년까지 초모룽마(에베레스트), K2를 포함한 히말라야 13좌를 등반하였고 마지막 1좌만을 남겨둔 상태다. 코로나로 인해 미뤄지다가 지난달 마지막 여정을 위해 출국했다. 세계는 그가 대기록을 작성하기를 바라고 있다.

“제발 다리가 생기게 해주세요.” 선천성 무형성장애를 안고 태어난 김세진은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왼쪽 다리는 발목 아래가 없다. 게다가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만 있는 탓에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는 티타늄의족을 끼고 생활하지만 어려서는 로키산맥을 등반했으며, 10km 마라톤에도 출전해 우승했다. 2009년 세계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 3관왕에 올랐다. 2016년에는 패럴림픽이 아닌 비장애인이 벌이는 리우올림픽 10km 수영마라톤에 참가하였다. 투혼을 다해 완주했지만 아쉽게도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양어머니의 교훈이다. “걷는 건 중요하지 않아.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줄 아는 게 중요해.”

강불포해(江不抛海) 강물은 결코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평지에서도 굽이쳐 흐를 때가 있을지라도. 손가락이 없으면 팔뚝으로 걸어 거친 바위를 오르며, 두 발이 없어도 헤엄쳐 나가자. 포기抛棄는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포기暴棄가 있다. 자포자기自暴自棄(절망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보지 아니함)의 줄임말이다.

 

抛 포 [던지다 / 버리다]

①抛(포)는 _(두드릴 구)와 力(힘 력)의 합자다. 문을 열어 달라고 손(_)으로 아홉(九) 번을 두드렸더니 힘(力)이 다 빠져 포기한다는 뜻이다. ②抛(포)의 본자는 _(포)다. _(수)와 _(왕)과 力(력)이 모인 글자다. _(왕)은 사람(大)의 한쪽 정강이가 굽어 걷기가 불편한 모습이다. 손(_)과 다리(_)가 불편하면 이내 힘(力)이 빠져 걸음을 그만두게 된다.

 

棄 기 [버리다 / 그만두다]

①棄(기)는 세상(_/世세) 밖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표현했다. 나무(木) 처지에서 생각하면 ‘버리는’ 일이다. ②옛날에는 아이가 일찍 죽어 소쿠리에 담아서 내다 버리는 일이 잦았다. 갑골문에도 보이는 이 글자가 바로 棄(기)다. 윗부분 글자는 머리(_두)를 강조한 얼굴(_)인 ‘갓난아이 돌’이며, 아래는 _/_(잎 엽)이다. ③棄(버릴 기)의 고자_약자인 _(기)는 죽은 아이를 들고(_공)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더 이상 꾸려나갈 수 없다. 이제 손을 떼기로 했다.” 코로나 4단계라는 사상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을 비롯해 중견 사업체들까지 경영을 포기하겠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기세는 점점 가속화하여 극단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아니할 조짐이다.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고 했다.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포기’는 김장할 때 배추 셀 때만 써도 족하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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