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한 '추락의 길'로 이끄는 광기와 탐욕
▲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중 다니엘이 송유관 설치를 위해 교회에서 보혈 세례를 받는 장면.
▲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중 다니엘이 송유관 설치를 위해 교회에서 보혈 세례를 받는 장면.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보혈을 주시고 구원해 주세요!”

석유개발업자 다니엘은 교회 연단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미친 듯이 큰소리로 외친다. 리틀 보스턴의 제3계시교 목사 엘라이는 다니엘에게 따귀 세례를 마구 퍼부으며 더 크게 외치라고 다그친다. 엘라이의 온갖 모욕을 꾹 참으며 자신이 경멸했던 '할렐루야 쇼'의 보혈 세례를 받은 다니엘은 마침내 송유관을 깔 수 있게 되었다며 내심 기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를 박박 갈며 기필코 엘라이를 파멸시키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2007)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미국 초창기 '골드러시'에 이어 불어 닥친 '오일러시' 붐에 휩쓸려 물불 안 가리고 유전 발굴에 나선 석유개발업자 다니엘 플레인뷰의 부와 성공을 향한 광기와 탐욕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걸작이다. 특히 주인공 다니엘의 탐욕성과 폭력성을 광기 어린 눈빛으로 완벽하게 연기해낸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신의 경지에 오른 놀라운 연기가 압권이다. 그는 '나의 왼발'에 이어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사도(邪道)로 치닫는 종교와 자본주의의 '끝'

1898년 미국 서부의 황무지 땅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의 전경에 이어 어두컴컴한 땅속에서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며 암석을 부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홀로 금광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는 사다리가 부러지면서 밑으로 추락하고 만다. 고통의 비명을 지르던 그 순간, 그는 부서진 암석 틈에서 그토록 찾던 걸 발견하고는 기뻐한다. 은괴를 손에 꼭 쥐고서 땅 위를 기어가는 그는 이때부터 하늘을 향해 솟으며 상승의 길로 나아가는 산봉우리들과는 정반대로 땅속을 향한 하강의 길로 치닫는다. 다시 말해 바른 길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삿된 길 사도(邪道)로 치닫는 '추락의 길' 말이다. 다니엘은 금광 발굴에 이어 1902년부터는 '오일러시' 붐을 타고 석유업자로 변신하여 미국을 가로질러 곳곳으로 다니며 유전 발굴에 나선다. 몇몇 지역의 석유 개발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다니엘은 석유가 난다는 정보를 듣고 양아들과 함께 리틀 보스턴으로 향한다. 그리곤 선데이 목장을 비롯해 그 주변의 땅을 헐값에 매입하여 본격적으로 석유 발굴에 돌입한다. 감언이설, 위선, 가식, 사기, 협박, 폭력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는 이익에 눈이 먼 냉혹한 자본가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이처럼 부와 성공을 향해 돌진하던 그의 앞에 갑자기 장애물이 나타난다. 석유 시추 작업 중 인부가 사고사를 당해도, 양아들이 사고로 귀머거리가 되어도 그의 석유 발굴에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는데 마을의 교회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목사 엘라이는 바로 다니엘의 일그러진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다시 말해 둘은 각각 종교와 자본주의를 대표하며 광기와 탐욕으로 추락해간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니 다니엘이 거북해 할 수밖에... 영화는 미국의 초기 석유 개발사를 보여주며 석유가 낳은 부와 성공의 파괴적인 이면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아울러 기독교와 가족주의로 대변되는 미국 자본주의 정신의 허상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걸프전,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 오늘날 석유 이권을 둘러싸고 중동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부와 권력을 독차지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야욕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러한 폭력에 명분을 내주며 자본주의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엘라이와 다니엘의 관계를 통해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다니엘이 양아들을 이용한 '가족사업 쇼'로 석유사업을 확장했듯이, 엘라이도 '할렐루야 쇼'로 선교사업을 벌여 교회를 확장시켜 나간다. 이처럼 사도(邪道)의 끝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추락하던 두 사람은 결국 다니엘의 황량한 대저택에서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둘 다 마침내 추락의 끝에 다다른다. 아주 처참한 모습으로…

한편 성인이 된 양아들 H.W.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에 꼭 품은 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멕시코로 향하며 다니엘과는 다른 길로 나아간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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