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만 되면 표 구걸하는 현대판 각설이 '위정자'
▲ 事(사)는 전쟁에 나가 높게(亠) 깃발(中)을 손(彐)에 들고 싸우는 일이다, /그림=소헌

“얼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판서 자제로 팔도감사 마다고 돈 한 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섰네.” 찢어진 벙거지를 깊숙이 눌러쓰고 허리춤에는 동냥 바가지를 매단 누가 봐도 거지꼴을 한 무리들이 장터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걸쭉하게 입담을 뽑아낸다. 각설이(却說)란 사회에서 된서리를 맞은 사람을 이르는데, 공맹깨나 읊조리는 것을 보면 아마도 몰락한 가문을 태생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촉망받는 직업을 따지자면 당연히 직업 뒤에 ‘사士’字 들어가는 명함을 내미는 부류가 되겠다. 이른바 판·검사나 의사. 이에 질세라 너도나도 ‘사짜’라고 우기는 사람이 많은데, 한자韓字를 잘 몰라서들 하는 소리다.

1[事] 공직을 맡거나 시키는 일정한 직임을 맡은 임명직이나 선출직(공무원/법인)에 쓴다. 判事. 檢事. 刑事. 道知事. 監事. 理事. 다만 검사의 우두머리는 檢査長. 2[師] 전문분야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敎師. 醫師. 藥師. 看護師. 飼育師. 料理師. 庭園師. 魔術師. 3[士] 공인 기관에서 부여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辯護士. 辨理士. 會計士. 稅務士. 速記士. 指導士. 機關士. 獎學士. 技士. 棋士. 消防士. 航海士. 設計士. 碩士. 博士. 社會福祉士. 助務士. 4[使] ‘士’자 들어가는 직군 중에서 직급이 높거나 권한이 큰 사람이다. 大使. 公使. 觀察使. 朝鮮通信使. 5[史/使] 왕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띠고 지방에 파견되던 임시 벼슬. 暗行御史암행어사. 巡撫御史순무어사. 監賑御史(使)감진어사. 6[司] 保護司(보호관찰소에서 일하던 관리).

 

각설타령(却說打令) 각설이 떼에게서는 장타령 밖에 나올 것이 없다. 각설이는 장타령꾼(장이나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본바탕이 하찮은 것에서는 크게 기대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없음을 비유한다. 항간에서는 ‘覺說’이라 쓰는데 잘못이다. 각설이는 장타령을 다 부를 때까지 동냥을 주지 않으면 가지도 않고 불러댄다. 그러면 그 소리 듣기 싫거나 장사에 방해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얼른 줘서 보낸다.

 

事 사 [일 / 직업 / 섬기다]

①事(일 사)는 전쟁에 나가 높게(亠두) 깃발(中)을 손(彐계)에 들고 싸우는 일에서 왔다. 이 뜻은 事(사)의 옛 글자인 叓(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깃발을 쥔 손(又우)이 바로 보인다. ②事(사)는 ‘싸우는 일’에서 ‘섬기는 일’로 뜻이 확대되었다. ③史/㕜(역사 사)와 吏(관리 리)와 事/叓(일 사)의 뿌리는 같다. 사관(史사)은 한결같이(一) 공정하게(中) 손(彐계)에 붓(丨)을 들고 기록하는 일(事/叓)을 해야 한다.

 

“내가 걸어갈 길 가겠다.” 나라에서 주는 녹을 먹던 검사 출신과 감사원장 출신이 잇따라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선수를 치려는 여당에서는 이미 대선大選 경선일정을 확정했다. 도전자가 무려 아홉이 넘는단다. 야당에서도 여럿이 바지춤을 추키려고 한다. 국회의원 떨어지면 시장·군수에 나오고 또 떨어지면 장관·총리에 나온다. 여기는 기득권을 움켜쥔 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작년에 나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나왔네. 어허 이참에 대통령 한 번 하자꾸나.”

각설이패라는 전문집단이 정치사회 구조의 험난한 변화에 따라 용케도 변이變異를 일으켰다. 위정자는 현대판 각설이, 그들은 때만 되면 표를 구걸한다. 민중이여! 세태를 바로 보고 냉철한 판단을 하자. “나도 사짜야. 道士.”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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