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의 환영'을 깨뜨리는 영적 고향으로의 순례 여정
▲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중 달라이 라마가 하러에게 축복의 만트라를 읊어주는 장면.
▲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중 달라이 라마가 하러에게 축복의 만트라를 읊어주는 장면.

“산을 오르는 건 바보나 하죠.”

오스트리아의 유명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는 티벳 여인 페마의 환심을 사려고 아이거 북벽 등정 등 자신이 이룬 성과를 자랑하면서 건물 위에서 멋지게 등반 시범을 보인다. 그러나 페마는 그의 그런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티벳인에게 있어 높은 산은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의 보좌로서 절대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아(無我)'를 목표로 하는 티벳인과는 달리 '자아'에 집착하며 지신의 야망을 불태우는 서구인의 사고방식 역시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티벳에서의 7년'(1997)은 1944년부터 1951년까지 7년 동안 금단의 도시 티벳의 라사에 머물며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소년 시절을 함께 한 실존인물 하인리히 하러의 영적 여정을 그린 프랑스 출신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이 일으킨 2차 세계대전,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침공 등 20세기 중반 지구의 뼈아픈 과거를 관통한다.

 

세계 평화를 깨뜨린 그릇된 신념을 야기한 '분리의 환영'

붉은 나치 깃발로 물든 1939년 오스트리아. 나치당원 하러는 독일 히말라야 탐험대에 합류하여 만삭의 아내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이 낭가파르밧 등정 길에 오른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그는 자신의 야망을 중시하며 개인플레이로 일관해 사사건건 원정대장 페터와 갈등을 일으킨다. 눈사태를 만난 원정대가 정상을 코앞에 두고 철수를 결정하자 하러의 불만은 폭발한다. 철수 도중 2차 대전의 발발로 하러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영국군 포로로 붙잡히고 아내에게도 이혼당한다. 포로수용소 탈출 후 히말라야 산맥에 고립된 채 의지처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그는 앙숙 페터와 함께 어쩔 수 없는 동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성지 순례 행렬을 따라 불교국가 티벳의 성소 라사로 가는 영적 여정에 오른다. 영화는 서구인 하러의 티벳 여정을 통해 물질문명에서 정신문화로의 순례 여정을 그리며 그릇된 신념에 의해 평화가 깨져버린 세상을 향해 정화의 등불을 켠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갈등과 고통의 원인은 '나(자아)'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믿는 아집(我執)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 대자연, 나아가 영적인 근원인 창조주가 '나'와 분리되어 있다는 '분리의 환영'으로 인해 인간들 간의 갈등, 인간과 대자연의 갈등 등이 야기되는 것이다. 한때 '분리의 환영'에 홀려 제3 천년제국 건설을 부르짖은 나치의 그릇된 신념을 좇았던 하러는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상을 외치며 밀어닥친 중국의 침공으로 평온했던 티벳인들의 평화가 깨진 걸 목격하고는 참회한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와의 영적 교류를 통해 외부가 아닌 내면에 힘을 쏟기 시작한다. 마침내 '분리의 환영'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설산을 오르며, 어린 달라이 라마를 바라보며, 아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느꼈던 절대적 순수를 자신의 내면에서 만난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세상이 거대한 기계가 아닌 거대한 마음을 닮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과 마음이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마음이 물질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는 중국 당나라의 선승 마조 도일(馬祖 道一) 선사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心卽佛)”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