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워싱턴 포스트와 워싱턴 타임스가 발간되고 있다. 1982년 통일교 재단에서 창간한 워싱턴 타임스는 워싱턴 스타가 폐간되자 인력을 영입하여 미국의 수도에서 제2의 일간신문을 표방하며 창간한 것이다. 종교 단체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한계성에 종이신문의 퇴조와 맞물려 현재는 폐간위기에 이를 정도로 발행부수가 급감했으나 여전히 미국 정계의 주요 정치인들이 구독하고 있어서 발행을 계속하고 있다.

▶1877년에 창간된 워싱턴 포스트는 뉴욕 타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3대 일간신문으로 꼽힌다. 1972년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당시 대통령 닉슨의 측근들에 의해서 은폐된 민주당사 도청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끝내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그후 베트남 전쟁의 이면이 담긴 펜타곤(미국 국방부) 문서를 독점 연재해서 권위지의 기반을 닦았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 포스트를 세계적인 신문사로 도약시켰던 캐서린 그레이엄과 그의 아들 도널드 그레이엄이 경영난에 봉착한 워싱턴 포스트의 인수를 제안했을 때 몹시 당황했던 것 같다. 지난해 말에 발간된 그의 자서전 <발명과 방황>에 따르면 베조스는 신문과 같은 올드 미디어에는 관심이 없었고 재무상황을 보고는 크게 실망했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정말로 중요한 기관인가”를 숙고했다고 한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 민주주의 가치를 지킨 언론사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수를 결정했다고 쓰고 있다.

▶베조스는 2013년 포스트를 인수한 후 세계 최고의 기업 경영자다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편집 최고 책임자로 보스턴 글로브 신문의 마틴 베런 편집국장을 영입했고 기술 책임자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프라카시를 영입했다. 그는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워싱턴 포스트의 수익 모델을 개혁하여 유료 구독자를 전 세계에서 확보하는 구독 모델을 통해 8천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이 같은 개혁을 통해 스스로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베조스에게 워싱턴 포스트 인수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자신의 비리를 구체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를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뉴욕 타임스와 CNN 같은 매체와 함께 포스트를 가짜 뉴스 진원지라고 공박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연방정부와 아마존 간의 계약파기를 시도할 정도로 베조스를 싫어했는데 베조스는 자서전에서 “미디어를 악마로 만들고 저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