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괜스레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아마도 하늘에 계신 아버님과 어머님 때문이리라. '살아계실 때 잘해 드릴 걸' 괜한 자책과 그리움만 커진다. 사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가난한데다 우리 7남매는 늘 집안일을 해야 했기에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이러한 가정환경이 나를 점점 옥죄었고,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는 습관을 갖게 됐다. 아마 아프리카를 가지 않았다면,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을 뵙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탓'만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그 깨달음을 통해 나를 힘들게 했던 굴레와 작별할 수 있었다.

굴레를 벗어던지니 세상이 참 많이 달라 보였다. 비로소 감사라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 부모님은 나를 힘들게 하는 분들이라고만 여겼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형편이 어려워서,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일해야 해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야 해서 넉넉히 챙기지 못하고, 맘껏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여느 어버이처럼 한없이 넓고 깊으셨다.

그런 부모님께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뿐인 딸과 사위를 위해 절약하며 뒷바라지하신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에게도 감사드릴 따름이다. 이태석 신부님께 '감사'란 선물을 받은 답례로 수단어린이장학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톤즈 아이들을 돕게 된 연유 역시 그러하다.

감사라는 게 참 신기하다. 처음엔 마음의 문을 열기가 그리 어려웠는데 한번 여니 차고 넘칠 만큼 감사의 순간들이 늘어나고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온다. 구청장 4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크든 작든 모든 변화는 감사의 계기가 됐다. 주민 의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며 앞서가는 정책을 만들어낸 직원들, 때론 쓴소리 때론 바른 소리로 최고의 조력자이자 홍보대사가 돼준 주민 여러분들 덕분이다.

최근에도 감격적인 순간을 경험했다. 우리 서구의 자랑이자 대표 브랜드인 지역화폐 서로e음의 2주년을 맞아 성공 주역들을 모시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구 경제 살리기 서로e음' '캐시백 10%'라는 문구가 새겨진 초록색 단체복도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2년여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옷을 입고 서로e음 첫 발행을 30일 앞둔 시점부터 주민 한 분 한 분을 직접 만나 지역화폐에 대해 설명드렸다.

시장과 골목, 주요 역세권에 이어 청라커넬웨이 등 핫플레이스까지 조를 짜서 열심히 찾아다녔다. 당시만 해도 지역화폐가 왜 절실한지, 카드형 지역화폐가 어떤 면에서 편리한지, 전자식 모바일 플랫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단 2년 만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서구민 10명 중 7~8명이 소지하고, 발행 19개월 만에 무려 1조원 발행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구민 여러분 그리고 소상공인, 중소기업인들이 일등공신이다. 서구 안에서의 소비가 늘어나고, 대형마트보다 소상공인 매장을 즐겨 찾는 등 소비패턴이 눈에 띄게 바뀌면서 반신반의하던 지역화폐의 효용성까지 입증시켰다.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잇는 데서 출발한 '이음'이 서구의 정책 철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서로e음의 성공에 기인한다.

숨은 공로자도 많다. 42명으로 시작한 지역 매니저를 비롯해 전국 최초의 민관운영위원, 명예홍보대사와 혜택플러스 가맹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서로e음을 위해 뜻을 모았고, 서로e음으로 하나가 됐다. 발벗고 나서준 이분들이 없었다면 서로e음은 아마도 극소수만 사용하는 그저 그런 지역화폐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모두의 헌신 덕분에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에게 든든한 힘이 되며 나눔의 가치까지 채워가는 서로e음으로 키워낼 수 있었다. 앞으로는 환경과 문화에 이어 사회적경제까지 이어나가려고 한다.

감사할 일이 많은 건 행복하다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내게 5월은 한없이 감사한 이들로 인해 행복이 넘치는 달이다. 오래전 깨닫지 못했다면 못 느꼈을 터다.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것만으로 일상이 그리고 인생이 달라졌다.

“최고의 부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 말한 월 스트리트의 전설 존 템플턴처럼 감사는 부자까지도 만들어주는 가히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