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집 담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윤경자 씨.

1980년대 들어서자 월미도에 분위기 있는 카페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의 월미테마파크 부근에 '헤밍웨이'가 있었다. 이름에 끌려서 처음 가봤던 2층의 이 카페 주인은 가수 이수만이었다. 그는 1985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방송 활동을 하며 그 카페를 운영했다. 카운터에 앉아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그를 가끔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월미도 앞바다를 보며 K팝을 구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서 SM 엔터테인먼트의 종잣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한류 음악의 첫발은 월미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월미도 하면 흔히 놀이동산, 횟집, 모텔 등만 있는 관광지로만 생각한다. 이곳에도 '주민'이 있다. 얼마 전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공중에서 월미도 일대를 내려다보다가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줄지어 있는 동네를 보게 되었다. 며칠 전 그곳을 찾아갔다. 1970년대 지어진 주택들이 반듯한 골목을 이루며 모여 있다. 구멍가게, 세탁소, 교회, 식당은 물론 동네병원도 있는, 우리가 늘 보았던 동네와 다르지 않았다.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담장에 그림을 그리는 여성 한 분과 마주치게 되었다.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잠시 구경했다. '그림으로 치면 700호 크기'의 자기 집 담장에 멋진 산수화를 그리던 중이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부군은 인근에 있는 국립 해사고 교장을 지냈고 부부는 40년 가까이 그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경자 씨는 “취미로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나는 '월미도의 천경자'를 만난 듯했다.

월미도가 품은 역사는 장구하고 격동적이다. 기록으로 남은 사건과 이야기만 열거해도 몇 권의 책이 된다. 40년 전 보았던 헤밍웨이 카페의 이수만과 지난주 골목에서 마주친 아마추어 화가도 월미도가 품은 인물이며 소소한 이야기다. 달은 단번에 차오르지 않는다. 월미도(月尾島)의 역사도 크고 작은 일상들이 모여서 차오른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