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잘 사용하는 단어 중에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있다. 특히 관광 활성화,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단어와 결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토리텔링의 사전적인 의미는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로 강력한 스토리가 가지는 힘은 대단해서 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식당의 간판에 붙어있는 '원조'라는 말도 스토리텔링의 일종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원조라는 낱말이 지닌 고유성, 역사성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다. 전남 장성이 홍길동의 고장으로 홍길동테마파크를 만들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 소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출생지인 강릉이 홍길동의 고향은 강릉이라고 다투는 것도 홍길동이라는 스토리가 지닌 힘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는 사례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라도 단박에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드는 감동이나 반전이 있어야 한다. 이 두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스토리는 오히려 메시지 전달에 혼선만 가중할 뿐이다.

양평군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미술가들에게 창작비를 지원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양평군 공무원 출신 작가의 소설 '여울넘이'의 줄거리를 소재로 설치작품을 제작하게 한 것도 잘못된 스토리텔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양평읍 양근천 산책로에 설치된 9개의 미술작품마다 붙은 설명서에는 예외 없이 '소설 여울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문제는 아무도 '여울넘이'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38명의 작가도 여울넘이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가급적 소설을 완독하고, 안되면 제공한 요약본이라도 읽어달라”는 양평군 담당 공무원의 요구가 있었다고 작가들은 말한다.

“양평군이 준비한 소설 줄거리를 14마당으로 요약한 자료를 보고 작품을 하는 것이 작가의 창의력을 제한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군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뒤따랐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표작가도 “공무원이 개입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린 사례”라고 실토한다.

이래서는 양평군이 '남한강에 대한 스토리 발굴에 의한 미술 작품길을 조성해 지역의 품격을 높이고,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이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울넘이가 뭐지?'라는 표정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양평군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양평군의 시도는 오히려 무명에 가까운 소설의 인지도만 높여주는 주객전도가 되고 있다.

/장세원 경기본사 사회2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