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정치 향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간다”

민주주의·지방자치 적절히 조화
수원 변화 이끈 지방분권 전도사

시민을 최우선 핵심가치로
지역 직결 문제라면 과감히 틀 깨

단체장 출신으로 최고위원 올라
지방의 힘 보이며 희망정치 도전

자치분권주의자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했던 시민사회활동가, 수원시 최초 3선 시장.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장 출신 집권당 최고위원 당선. 염태영 수원시장이 남기고 있는 정치 이력은 지방분권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염 시장은 지역사회 활동에서 시작해 정치에 입문한 뒤 지방분권의 전도사로 발돋움했다.

▲ 염태영 수원시장이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염 시장은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이어온 지방분권이라는 과제를 이어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염태영 수원시장이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염 시장은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이어온 지방분권이라는 과제를 이어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시민운동가, 지방분권 전도사로

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1월. 여러 기초단체장을 놓고 각종 예측과 평가가 쏟아지는 가운데, 3선 출마를 공식화한 염태영 시장은 단연 독보적인 관심사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역대 3선 시장이 없었던 수원에서의 새 역사가 쓰일 가능성, 염 시장이 경기도지사와 국회의원(중앙정치)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이 교차했다. 그동안 염 시장의 정치적 행보와 선택을 들여다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염 시장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적절하게 녹인 정치로 수원을 180도 바꾼 정치인이다.

1980년대 학생 시절,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그는 1994년 수원지역 시민단체로부터 리더로 추대돼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이후 2010년 시장에 당선된다. 보수 텃밭이었던 수원시에서 첫 진보정당인 민주당 출신 시장이다.

“콘크리트 행정을 사람에 투자하는 행정으로 바꾸겠다. 이를 위해 각계각층의 시민과 지역의 지도자가 참여하는 기구를 설치하겠다.” (염 시장 민선 5기 목표 발표 中)

염 시장은 극도로 대립하는 지자체와 시민 간 갈등에 '민·관 협치'를 제안했으며, 이례적인 성공 사례를 배출했다. 1995년 '수원천 복원 운동'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수원천은 도심에서 보기 드문 하천이다. 청계천이 관이 주도하고 대리석으로 치장된 인공하천이라면, 수원천은 자연을 보존한 동시에 시민이 설계했다. 이런 경험은 '시민 주권'이 정책·사업을 움직이는 시정 변혁으로 이어졌다.

2014년 재선, 2018년 3선까지 탄생한 수많은 제도 중 실제 재판처럼 시민이 의논하는 '시민배심원제'는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공론화 롤모델로 참고했다. 시민이 토론 등을 거쳐 미래의 도시계획을 그리는 '도시정책 시민계획단'은 국내·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초등학교 4학년 국정교과서에 수록됐을 정도다.

하지만 염 시장이 종종 마주한 건 불균형과 불평등이라는 현실이다.

예를 들면 지방이 특색있고 시민에게 밀착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중앙정부가 사사건건 통제해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중앙의 강제적 개입, 획일적인 재정 교부 등. 염 시장은 각종 문제와 수원시가 인구 120만 최대 도시인 점을 빗대 “몸은 큰데 옷은 작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이에 정치 인생을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던졌다. 그간 쌓은 업적 덕에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등 더 큰 정치 인사로 유력한 후보였음에도 3선을 택한 배경이다.

염 시장은 자신에게 던져진 수많은 질문과 의문에 2018년 3월 발간한 저서 <모두를 위한 나라>를 통해 지방분권을 향한 간절함과 의지로 대신 답했다.

“나는 수원시장 자리를 다음을 위한 디딤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수원은 그 자체로 중앙이고 하나의 나라이다. 지방분권 국가로 전환이 목전에 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 염태영 수원시장이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 공약을 비롯해 정치권이 추진했던 ‘자치분권개헌’의 조속한 실현을 요구하며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수원시
▲ 염태영 수원시장이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 공약을 비롯해 정치권이 추진했던 ‘자치분권개헌’의 조속한 실현을 요구하며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수원시

#함께하고 싸우며 키운 열망

염태영 시장의 지방분권은 큰 줄기가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시민사회 추천을 받아 염 시장을 지속가능발전 비서관으로 임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방분권에 대해 종합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자치경찰, 교육자치, 공공기관 지방분산 등을 최초로 시도하며 염 시장과 수시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을 이어 받으면서 염 시장 또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등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중앙과 싸울 때도 있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행정안전부는 시·군 간 재정력 격차 해소 차원에서 불교부단체 조정교부금 조정 정책인 이른바 '지방재정개편'을 추진했다. 문제는 인구 등 규모가 대도시인 수원·고양·성남 등 6개 기초단체가 재정상 불이익을 얻게 됐고, 시민들은 크게 분노해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게 된다.

염 시장은 시민과 함께 “지방자치의 근간을 훼손하고 하향 평준화시키는 '개악'이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충남·전북·대전·전남·경남·대구 등을 돌며 지자체장에게 내용을 전했다. 지방정부, 그리고 그 속의 주민들이 겪은 설움을 표출한 것이다.

결국 지방재정개편을 막진 못했지만, 염 시장의 진심 어린 호소는 늘 중앙의 그림자에 가려지고 권위에 눌러졌던 풀뿌리 정치권을 태동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4년 후 당내 최고위원 선거. 전국 기초단체장·광역·기초의원들이 염 시장을 두고 '지방분권의 리더이자 희망'으로 부르며 연달아 지지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지방이 바꾸는 세상

“염태영 시장은 다릅니다. 시민에게 정말 필요한 것, 시민을 위한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방법을 찾아 실현해 나갑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소장, 책에서 염 시장을 소개하며)

그는 시민과 지역에 직결된 문제라면 틀을 과감히 깬 사람이다. 감염병 분야는 지방, 특히 기초단체는 권한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5년 메르스 당시만 해도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숨기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하늘을 찔렀다.

이 역시 1선에서 대응하는 지방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채 중앙의 지시에 묶여 시민 불편으로 이어진 부작용이다. 즉, 지방분권 필요성과 일맥상통한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행하지도 않은 시기인 1월22일, 염 시장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시의 대책과 시민이 알아야 할 유의사항을 적어 '대응일지 1보'로 게재했다.

대응일지는 확진자와 동선 등 상황에 따라 정보가 최신화됐다. 염 시장은 또 보건소·민간과 협력한 긴급대책반도 구성했다. 모두 중앙이 말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한 것이다. 염 시장의 솔선으로 SNS 안내 등 지방 차원의 대응이 보편화 됐다.

염 시장은 초동 방역의 핵심인력인 역학조사관을 기초단체에 둘 수 없는 문제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해 실제 법제화됐고, 기초단체 최초 접촉자 임시생활시설 운영 등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 체계 강화를 앞당겼다. 코로나 사태 밖에도 청년지원 정책개발, 기초단체 인권보호 기구, 트램(친환경 교통수단) 도입, 불합리한 행정구역 조정, 특례시 등 염 시장이 '권한 부족'이라는 벽을 넘어 국가 시스템과 제도적 변화를 시도한 사례는 무수하다.

▲ 지방분권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사진제공=수원시
▲ 지방분권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사진제공=수원시

#염태영 분권, 희망을 주다

이제 염태영 시장과 분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연결 선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기초단체장 출신, 원외 인사가 집권당 최고위원에 오른 적은 한국정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정치의 중심에 기초단체장은 안 된다는 편견에 염 시장은 '지방의 힘'을 내세워 맞섰다.

“국민은 가족보다 먼저 마중 나오고 가족처럼 보살피는 지방을 경험했습니다. 지방은 국가를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저의 도전은 풀뿌리 정치 가능성을 가늠하는 정치사적 실험이 될 것입니다.”

염 시장은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 전부터 2000여명의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의 지지를 얻었다.

염 시장은 최고위원직 1년도 지나지 않아 상당한 두각을 드러냈다. 중앙에서 놓칠 수 있는 '핀셋'처럼 세심히 집어낸 것이다.

실제 정치권을 비롯해 지방-중앙 간 각종 이견으로 난항을 겪었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국회 통과와 '제2차 재난지원금' 지원은 염 시장이 중간 다리 격인 역할을 하면서 양측의 조율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이어 당 정책위와 식약처에 건의해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시한 1년 유예'로 소규모 식품제조·가공 영세업체들이 영업정지 처분 등 불이익을 피한 사례, 필수업종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노동자 지원조례'를 전국적으로 확산한 사례 등이 있다.

아쉽게도 염 시장은 여당의 4·7재보궐선거 패배 여파로 무수한 성과를 뒤로 한 채 최고위원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저력은 지방-중앙 사이 견고했던 벽을 무너뜨린 사건으로 기록에 남았다.

문 대통령의 멘토이자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인 송기인 신부는 염 시장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자치와 분권에 싹을 틔웠다면, 염태영은 그 정신을 실천한 인물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로 2022년 1월13일부터 수원·고양·용인·창원이 특례시가 되는 등 지방분권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쏘아졌지만, ▲재정분권 ▲지방일괄이양법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등 갈 길이 까마득하다.

주민이 어디에 살든, 그곳이 서울이든 지방이든,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염태영 수원시장. 동네와 마을 단위에서 이뤄지는 민주주의와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한 그.

염태영의 지방분권은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염태영은 누구인가

염태영 시장(61)은 서울대 농화학과 재학시절에 학생운동과 야학, 기독청년운동의 길을 걸었다. 대학 졸업한 후 일반 회사에 취업한 뒤 1994년 수원환경운동센터를 설립해 활동했다. 2005년 청와대 지속가능발전 담당 비서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수원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와신상담 끝에 2010년 시장선거에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ICLEL) 글로벌 집행위원, 아시아태평양 도시협력체(CityNet) 집행위원,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으로 활동해 도시외교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