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에 철도가 개설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 한국교통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2030) 수립연구' 공청회에서 수도권 내륙선(동탄∼안성청∼주공항), 평택∼안성∼부발선 구축계획 등을 발표했다. 수도권 내륙선과 평택부발선 광역철도가 오는 6월 발표 예정인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확정·고시된다. 2개 철도 노선이 개설되면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철도가 없었던 안성시는 32년간 철도 불모지의 서러움을 덜게 됐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안성의 철도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수년 전 안성시 출입 기자로 활동할 때다. 한 술자리에서 시청 공무원과 지역 유지에게 안성에서 장터 국밥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유를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전국 팔도 상인들이 사통팔달 교통요지인 안성을 거쳐 가면서 한 끼 식사를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장터 국밥이라고 했다. 우시장이 유명했던 안성에는 국밥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풍부했던 이유도 한몫했다. 그 입소문을 타고 장터 국밥은 전국 명성을 얻었다는 애기인데 말미에는 꼭 덧붙이기가 있었다. 역사적 근거는 없다고.

그러면서 이어진 질문은 장터 국밥이 유명할 만큼 사통팔달 교통요지라는 안성에 왜 철도가 없냐는 것이었다. 딱히 명확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선친들로부터 들었던 구전을 들려줬다. 일제가 안성에 철도를 놓으려고 해서 동네 어른들이 들고일어나 반대했다는 애기다. 그 이유가 “양반 도시에 화차가 달린다는 것이 웬 말이냐”며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저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또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고.

장터 국밥에 대한 대답은 그럴 듯했는데 안성에 왜 철도가 없을까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 차에 안성시가 국가철도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편집 기획부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국회의원 당선 이전인 2019년부터 국가철도 유치에 나섰던 더불어민주당 이규민(안성) 국회의원에게 조언을 받아 관련 사료와 논문, 교수와 학예사들을 수소문해 취재했다. 발품도 발품이었지만 두꺼운 논문과 사료를 찾아 읽는 수고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역사의 퍼즐을 맞춰 가면서 안성 지역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확인했다. 조선을 침탈한 일본이 경부철도를 개설하기 위해 5차례나 현장 답사를 했다.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1892년부터 1~3차 답사로 예정했던 안성을 거쳐 지나가는 경부철도 노선을 고려했다. 그러나 러일 전쟁을 앞둔 일제는 손쉬운 물자조달을 위해 급하게 철도를 개설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일제는 1900년부터 4~5차 답사에서 안성을 포함한 추풍령 등 산악지역을 피해 평야에 경부철도개설을 계획했다. 1904년 결국 부산~서울을 잇는 경부철도 노선에서 안성은 제외됐다.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경부철도는 각 지역을 균등하게 발전하기 위한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태생적 결함을 안고 탄생한 기형적 노선”이라고 지적했다. 경부철도 노선에서 제외된 안성은 일제의 철도 노선에 따른 상업구조 개편에 따라 상업도시의 옛 명성을 잃어 갔다. 반면 경부철도 노선에 편입된 평택은 신흥 경제도시로 극부상했다. 안성은 이후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925년 안성~천안을 잇는 안성철도 노선이 개설되기는 했지만 이미 상업도시의 명성을 잃은 안성의 이용객은 많지 않았다. 결국 안성선은 1989년 폐선됐다. 안성의 철도는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에 일제 수탈의 아픔을 품고 있었다.

일제가 경부철도 노선에서 안성을 제외한 지 117년 만이고 안성선이 폐쇄된 지 32년 만에 안성에 철도가 개설된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향후 10년간 철도망 구축의 기본방향과 노선 확충계획 등을 담고 있는 중장기 법정 계획안이다. 이 때문에 단기간에 철도가 개설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장기안에 반영된 것만 해도 안성시로서는 큰 성과다.

안성에 계획된 철도가 실제로 개설되기까지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당장 철도 개설에 따른 수조 원에 달하는 사업비 확보도 그렇고 경제성도 따져 봐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쪼록 첫발 내딘 안성철도가 정상궤도를 달리기를 기대한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기차가 안성을 지나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