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장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존재한다. 산야의 식물들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야 봄에 새싹을 올려 자신만의 자태를 뽐낼 수 있다. 청량산 각양각색의 초목들은 새싹들을 틔워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자연미를 창조한다.

꽃을 피워 바람과 벌들을 유혹하고 가을의 결실을 기약한다. 개구리들도 동면에서 깨어나 짝을 찾아 자신의 목청을 마음껏 발산한다. 모든 동식물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자연의 순리를 믿고 의지하면서 자신들의 성장에 알맞은 양만큼만 먹고 마시면서 공생을 통해 후손을 키워낸다.

그러나 오늘날의 동식물들은 예측할 수 없는 자연현상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꽃을 피웠는데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일찍 잠에서 깬 개구리가 동사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탐욕의 결과에 동식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면서 지구촌에 공생하는 동식물들을 위협하고 있다.

때때로 부모는, 자녀를 경쟁과 비교의 틀 속에 가두어 편향적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아이들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운 마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면서 성장하는 동식물처럼 부모가 자식의 심신 성장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숲(자연의 섭리)과 나무(내 자식)를 함께 보아야 하는데 나무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할 일이다. 숲이 사라지면 나무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대지가 한정된 목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1마리씩의 소를 농장에서 방목하여 우유를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촌장이 3마리의 소를 목장에 넣어 많은 양의 우유로 생활이 윤택해졌다. 이것을 본 모든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3마리 이상의 소를 목장에 넣어 방목하자 소들은 풀뿌리까지 먹게 되고 목장은 황폐해져 더 이상 소들을 사육할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결정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반기는 곳은 없었다.

작년 6월에 필자의 텃밭에서 모든 작물이 새싹을 올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밭 가장자리에 이름 모를 새싹 세 포기가 살포시 얼굴을 내밀었다. 종자를 파종한 기억이 없는 곳에 싹을 튼 정체불명의 녀석들을 뽑으려다가 잡초와는 다른 모습으로 여겨져 지켜보기로 했다. 수시로 관심을 두고 물을 주며 키우는 중에도 무슨 식물인지 도통 알 수 없어 녀석들과 함께 호기심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새싹들이 성장하여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 꿀벌들을 초대했지만, 열매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심스럽게 줄기를 살펴보는데 잎 속에 숨겨진 2~3cm 정도의 열매를 발견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열매의 성장으로 녀석들이 오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여기에 오이를 심었단 말인가? 언덕 아래로 여러 갈래의 줄기를 내린 오이가 조금 더 성장한 후, 녀석들은 작지만 야무진 조선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리가 내려 잎과 줄기가 무너져 내릴 때까지 수십 개의 오이를 생산하여 주민과 나누는 즐거움도 안겨주었다.

돌이켜 보니 조선오이에 부끄러웠던 순간이 떠오른다. 귀한 보물을 몰라보고 뽑아서 버리려고 했던 내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믿지 않기로 했다.

우리 교육 현장에는 아직도 어른의 편견에 사로잡혀 저마다의 타고난 아름다운 마음과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숲과 나무를 함께 보며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믿고 기다려주는 교사와 부모를 갈망한다.

/안종진 지혜공유학당 꿈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