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세상으로 걸어가겠습니다


-서른, 암흑을 보다
카이스트 졸업 후 IT변호사 꿈꾼 인재
2012년 의료사고로 하루아침에 리셋
좌절하지 않고 이듬해 무작정 학교로
음성 프로그램에 의지한 채 공부 시작


-장애인 인권을 듣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로 일하며
학대 실태 등 체감하고 변화 위해 앞장
현재 법 처벌 약해…실제적 구속력 필요


-신념과 꿈을 찾다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은 1호 판사 최영
일도 연애도 잘하는 모습에 인생 배워
최소한의 도덕인 '법' 테두리 안에서
억울한 사람들 없도록 판결로 말할 것
▲ 국내 시각장애인 2호 판사인 김동현 판사 20일 수원법원종합청사 사무실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법관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법이란 국가의 기본이고 삶을 규정하는 기본 틀이라 생각해요. 공정하게 잘 판단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죠.”

올해 3월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첫 부임한 김동현(39) 판사는 20일 인천일보와의 만남에서 법의 의미에 대해 '최소한의 도덕'임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좋은 판결을 내는 판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사회 자체는 법으로 돌아가는 사회입니다. 과거와 같이 왕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되는 사회가 아니듯이 법은 국가에 기본이고 삶을 규정하는 기본 틀이라 생각합니다.판사는 판결로 말하는 직업입니다. 사건 기록을 더욱 잘 보고 열심히 연구해 공정한 판단을 내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좋은 재판을 하고 싶습니다.”

김 판사는 사실 시각장애를 앓고 있다. 시각장애 1급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에 산다. 최영 판사에 이어 국내 2호 시각장애인 판사다. 시력을 잃기 전 그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공학도였다. 부산과학고등학교를 거쳐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한 후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관심을 기울였다. 과학기술부 공무원이 되기 위해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고 로스쿨도 IT 전문변호사가 되기 위해 갔다.

그러다 2012년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수술대 위에서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인생이 끝났구나 생각했죠. 안타깝게도 이과를 나온 사람이라 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죠.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빨리 현실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후천성 시각장애는 선천성 시각장애보다박탈감이 크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5월에 사고가 나고 8월에 퇴원했는데, 글을 음성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해부터 공부하려고 노력했어요. 절에서 한 달간 기도를 한 후 다음 해 3월부터 재활도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학교에 갔어요. 처음에는 혼자 이동도 전혀 안 돼 어머니가 등하교를 시켜주고, 학교 도우미 친구들과 밥을 먹었어요. 어려움도 있었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기본적인 게 해결이 안 되면 참 비참해져요. 약간의 슬럼프도 있었어요.”

슬럼프도 있었지만 그는 시력을 잃고 오히려 공부가 더 잘됐다고 한다. 다만, '졸음'은 천적이었다. “공부는 오히려 잘됐어요. 시력을 잃고 마음가짐을 바꾸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았어요. 당시에 '시각장애인이 공부를 잘하는 걸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중간만 가면 된다'는 등의 말이 도움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노력하는 것에 비해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공부하며 제일 힘들었던 건 엄청 졸리다는 거에요. 제가 공부하는 건 눈을 감고 동영상 강의를 보는 거라 보면 돼요. 한마디로 엄청 졸린 일을 하고 있다는 거죠.”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힘에는 국내 1호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 판사의 도움이 컸다.“학교 지도교수의 소개로 최영 판사를 처음 봤어요. 서울 남산에서 만나 산책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며 장애인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최 판사님은 삶을 자유롭게 살며 '원하는 게 있으면 하라'고 말해요. 연애도 하시고 판사 일도 잘하시는 모습에 '저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했죠.”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으로 2년간 일했다. 재판연구원은 보다 나은 판결을 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는 자리다. 이후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키는 변호사로서 장애인 인권실태와 신체적·경제적 학대, 사기피해, 장애수당 횡령 등 사회적 약자가 겪는 실태를 체감했다. 그러면서 학대받은 장애인을 도와 삶을 바꿔나가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다. 2019년에는 서울시 복지상 장애인 인권 분야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장애인 법 제도에 대해 '실제적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조문이 다 있어요. 그런데 처벌규정이 적다 보니 다수 장애인은 법이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차별이 악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생긴다고 봐요. 명확하게 규정해야 장애인들이 법을 잘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5년의 실무경력을 쌓고 지난해 10월에는 신임 법관 임용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수원지법은 김 판사가 부임한 후 속기사 2명을 새로 채용해 재판 관련 기록을 문서 파일로 바꾸는 일을 돕고 있다. 김 판사는 문서 파일을 음성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재판을 듣는다. 프로그램이 지원하는 최고속도로 흘러나오는 재판기록은 '외계어'에 가깝다. 이 속도로는 1시간에 평균 100쪽 정도의 기록을 들을 수 있어 일반인이 책 읽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이날에는 경기도교육청 '꿈의 대학' 화상강의 앞에 서기도 했다. 그는 판사로서의 신념과 꿈을 좇아가라는 메시지를 고등학생들에게 전했다. “제가 눈이 안 보인다고 포기했다면 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것도 없었을 거예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이고, 누구나 그 자리에서 방법을 찾고 잘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기회를 잡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동현 판사는?

김동현(39) 판사는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5월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2015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하고,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에서 변호사로 3년간 일한 경력으로 지난해 10월 신임 법관에 임용됐다. 김 판사는 올해 3월 수원지법 판사로 첫 부임을 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