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는 영적 본성을 깨우는 '숨소리'
▲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중 휴가 혼혈 아들 호크를 품에 안은 장면.
▲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중 휴가 혼혈 아들 호크를 품에 안은 장면.

“알아. 빨리 끝나기만 기다린다는 거. 아빠가 있잖아. 아빠가 꼭 지켜줄게… 숨이 붙어있는 한 싸워야 돼. 그러니 계속 숨을 쉬렴…”

세 가족이 고요히 잠든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미군들에 의해 백인인 사냥꾼 휴 글래스는 인디언 아내를 잃고 위험에 처한 혼혈 아들을 가까스로 구해낸다. 휴는 잿더미로 화한 포니족 마을의 폐허 속에서 쓰러진 어린 아들을 안고서 흐느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아들을 지켜내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는 전설적인 모험가 휴 글래스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백인 정복자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대립이 첨예했던 19세기 초반 북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복수를 위한 처절한 생존 고투를 장엄한 대자연의 풍광 속에 담아낸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이다. 휴 글래스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카리스마의 눈빛과 극강의 열연으로 시선을 압도하며 마침내 4전 5기 끝에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중 아리카라족 샤먼이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을 외우는 장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중 아리카라족 샤먼이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을 외우는 장면.

'인디언 학살'의 비극사를 배경으로 심도 깊게 탐구한 인간의 본성

흐르는 물속에 잠긴 거미줄처럼 한데 얼기설기 연결된 뿌리들을 카메라가 부감으로 보여준다. 흩어졌다 합해졌다 하는 나무들의 물그림자를 훑으며 나아가던 카메라는 어느덧 각각의 개체로 우뚝 선 나무들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마치 천지창조를 상징적으로 함축한 듯한 오프닝 장면은 곧이어 기다란 총부리를 들이밀며 화면 안으로 침범하는 인간의 다리에 의해 평화가 깨진다. 영화는 유럽 백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침입사를 배경으로 담아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를 시도한다. 휴를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 가족, 종족, 인종 등에 충실한 강한 생물학적 본성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휴와 피츠제럴드의 대립, 아리카라족과 포니족의 대립, 백인종과 홍인종(인디언)의 대립이 야기된다. 나아가 종과 종의 대립, 즉 인간과 동물 간의 대립도 야기된다. 휴가 과거에 어린 아들을 보호하려고 백인 장교를 향해 총을 쐈듯이, 어미 곰도 새끼를 보호하려고 휴를 공격한 것이다. 핏줄에 대한 애착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자기보존 본능에 기인한다. 모피 사냥꾼들의 길잡이로 일하던 중 곰의 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휴는 자신을 배신하고 아들까지 죽인 동료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생존을 위한 고투를 벌인다. 그는 광활한 숲, 드높은 산, 거센 강물, 눈보라, 혹한 등 거대한 대자연의 위력을 실감하면서도 이를 극복해나간다. 그리고 대자연의 일원으로 우뚝 선다. 마침내 죽음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휴는 피츠제럴드와 피 튀기는 처절한 혈투를 벌인다. 그런데 복수를 하려는 순간, 생존의 여정에서 만난 인디언의 말이 귓전을 울리며 깨달음을 남긴다. 모든 만물은 창조주에 의해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생명을 주는 이도, 생명을 거두는 이도 신밖에 없다는 것을…

아메리카 대륙에 백인들이 오리라는 걸 이미 오래전에 예언했던 인디언들은 새로운 인디언의 탄생도 예언했다. 예언에 따르면, 백인들에게 정복당할 때 죽음을 당한 인디언들이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무지개 전사들로 환생하여 인간과 대지의 조화를 되찾는 새 시대를 연다고 한다. 새 시대가 올 때까지, 우리는 영적 본성의 승리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 숨이 붙어있는 한…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