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벽돌공장으로 불린 '영신연와(永新煉瓦)'.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에 가면 우뚝 솟은 오래된 굴뚝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원과 화성주민이면 모두 한 번쯤 봤음직한 위엄을 뽐낸다. 이곳에 들어선 지 50여 년 됐다. 바로 벽돌공장 '영신연와'다. 산업화 당시 굴뚝 연기가 멈추지 않았던 곳이다. 우리 사회 경제성장 동력 산업의 중심이었다. 여기서 찍어낸 그 많은 벽돌은 우리 경제의 뼈대요,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 공장이 존폐 위기에 내몰린 지 오래다.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쉈다, 말기를 반복한다. 개발 논리에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영신연와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주민들은 1960년대에 들어섰다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영신여자고등학교의 전 이사장 출신인 회장이 명칭에 '영신'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부지엔 크게 가마터, 초벌 야적장, 무연탄 야적장, 창고, 노동자 숙소 등이 있다. 이곳에서 점토를 채취해 생산까지 한 번에 이뤄졌음을 짐작게 한다. 시설 내·외부가 낡았으나 위용은 50여 년 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문을 닫은 건 1980년대 초. 약 20년 만에 사람들 기억에서 멀어졌다. 굴뚝의 지금 모습은 현대식 건축물과 비교하면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 공장이 문 닫은 후 여러 업체가 공장 터를 임대해 쓰고 있다.

영신연와는 주민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꼽힌다. 당시 고색동의 랜드마크로 여겨져서인지 약속과 만남의 단골 장소였다. 2010년 들어 이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도시개발이 추진됐다. 굴뚝과 함께 철거대상에 포함되면서 주민들 기억에서 잊혀갔다. 2019년 시민들이 발견해 보존 운동을 벌이는 등 공론화에 나섰다. 수원시도 힘을 보탰다. 당면한 난제가 산적했다. 개인 소유권 문제부터 개발을 찬성하는 의견에 매번 부닥쳤다. 주민을 비롯한 학계, 작가, 정치인 등 '영신연와 지키기 수원시민모임'이 만들어졌고, 체계인 보존방법 찾기에 나섰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수원이 도시화하고 여러 건축물이 들어설 때 쓰인 벽돌을 생산한 곳으로, 도시의 역사와 함께했다 해도 무관치 않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도심 속 근현대 건축물이 없어 도시재생으로 활용할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수원시도 문화재 지정 등 보존 방안을 찾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시가 자체적으로 한 조사와 자문 결과, 영신연와는 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시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 개발을 원하는 주민과 '사업성 악화'를 이유로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측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수원시민의 보존 운동에도 결국 철거될 운명을 맞았던 '영신연와'가 흐릿하지만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수원시가 다각적으로 연구한 결과 보존 가치가 충분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최근 수원시는 지난해 6월 시작해 12월 발행한 '영신연와 벽돌공장 일원 기록화 조사 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관련 대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안창모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경기대 건축학 교수) 등이 집필한 보고서는 영신연와 시설 개요부터 역사, 가치와 보존 검토, 해외 사례 등을 223쪽 분량에 담았다. 1970년대 고색동(현 고색중 인근)에 들어선 영신연와는 옛 자료가 사라진 상태로, 건축물을 실측 조사하고 고증하는 과정을 거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보고서는 영신연와가 국내 유일한 '호프만 가마'로 소개한다. 이는 1858년 독일 화학자가 개발한 공법인데, 연료비 절약과 함께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다.

근대 서구식 건물이 유행한 시기에는 벽돌 수요가 높아 전국적으로 호프만 가마가 보편화됐다. 마포연와공장, 조선요업주식회사 등 60여 개 이상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1990년대 아파트 건설로 추세가 전환되며 벽돌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호프만 가마는 하나둘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지금은 영신연와만 남았다.

또 영신연와는 제토·성형·소성 등 벽돌생산 전 과정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사택 등 노동자의 삶도 엿볼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점에서 희소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산업·건축·사회·역사·문화 전반에 대한 평가에서 상당한 가치를 부여했다. 이어 독일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통해 문화유산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로 영신연와는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근현대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한 셈이다. 영신연와는 그냥 벽돌공장이 아니란 말이다.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