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놀이터의 본래 기능과 행정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문화기획자로 한창 활동할 당시, 어떤 자문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인천 안에 ‘도시개발로 인해 유휴공간이 생기는데 이곳에 어떤 시설을 두면 좋을 것 같은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 나는 그 공간을 그냥 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곳에 어떤 목적을 위한 시설을 세워 용도를 한정하기보다는 이용자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녹지화와 정비만 해줘도 충분하다. 정책사업으로 했던 ‘버스킹 존’이 ‘버스킹’을 망가뜨렸고, 야외무대는 복잡한 절차와 불편함을 초래했다. 흉물로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도심 속 빈 땅의 순수한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의회에서도 했다가 부동산 관계자의 인터넷 카페에서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도심 안의 휴식 공간이 증가하면 도시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린 다른 도시의 사례에서 그들의 빈 공간을 부러워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실 안에서는 빈 땅에 꼭 무엇을 넣어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놀이터도 마찬가지다. 놀이터를 조성한다고 하면 무언가를 넣으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넣으려고 하는지 예산 부족 이야기까지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들은 놀이기구보다 빈 공간을 이용하며 노는 것을 즐긴다. 기구가 오히려 그 욕망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놀이기구는 소품이지 전부가 아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장난감을 사주듯이 놀이터를 만들어줘서는 안 된다. 그들이 원치 않은 장난감을 굳이 사줄 필요가 있을까. 고도화되고 현대화될수록 놀이터만큼은 원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번갈아가며 사각 시멘트 상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19 이후로는 그것들이 더욱 심각해졌다.

아이들에게 탈출구가 없으며 너른 들판에서 뛰어 놀지도 못한다. 도심 안에서는 눈에 걸리는 것이 많으며 빌딩 숲은 숨이 막힌다. 놀이터마저도 숨이 막힌다. 법으로 규제하고 행정으로 막아놓고 자본주의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놀이터를 학습의 공간, 창의성 개발 등으로 포장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행정의 한계이다. 행정에서도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목표를 수립해야 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지극히 개성도 없고 과도하게 책정된 예산에 온갖 미사여구가 따라붙는다. 놀이터는 그저 ‘놀이를 하는 터’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숨을 쉬듯 노는 공간이다. 어른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무언가를 학습한다는 기대 또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놀이터마저 학원화시키지 않아야 한다.

최근 여기저기 놀이터에 대해 열변을 토로하다 보니 이런저런 의견들을 듣는데(대부분 성인), 여기서도 개발 욕구가 뿜어져 나온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놀이터, ‘oo랜드’ 같은 놀이터, 탈 놀이기구가 많은 놀이터, 괜찮은 놀이터가 주변에 있다면 주변 가치가 상승할 거라는 의견들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이 기현상은 어디서 시작이 된 것인가. 아이들의 놀이터마저 자본주의가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숲 놀이터’ 이야기를 꼭 한 마디씩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숲 놀이터와 자연 친화 놀이터는 반대할 이유 없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삶과 밀접하게 필요한 놀이터는 ‘도심 친화’ 놀이터가 아닐까. 숲 놀이터 또한 도시 안에서는 괴리감이 있다. 그 도심 친화 놀이터를 위해서는 해결돼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플라스틱 미끄럼틀은 수백에서 수천을 호가하고 놀이터 관련 예산이 세워지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다시 쳇바퀴 돌 듯 제자리로 갈 것이다. 심지어 놀이터 관련 법규에서도 ‘놀이터’를 놀이기구가 설치된 것이라 정의해버린다. 각자의 시작점이 너무 다르다.

얼마 전, 테마파크 팀에서 만든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화려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감의 기구들, 잘 꾸며진 조경이 보기가 좋았다. 뒷맛은 씁쓸했다. 몇 년 전, 인천의 어느 아파트에서 임대 동의 아이들은 놀이터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공고문이 오버랩됐다. 필자가 놀이터에 힘을 쏟는 이유는 아이들만은 어떤 환경에서도 차별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 시작을 놀이터에서부터 찾기로 했기 때문이다. 놀이터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도시를 바꿀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다.

놀이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그리고 행정과 정치가 발 벗고 나서지 않는 이상, 지금의 환경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아이들이 놀이터로 가는 도로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세움 건설교통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