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엔 촌철살인의 지혜가 엿보인다. “내 배 부르면 종에게 밥 짓지 말라고 한다”도 그 중 하나다. 내 배가 차면 아랫사람 배고픔을 모른다는 얘기다. 자기만 알고 남의 처지나 형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음을 뜻한다. 부귀를 누리면 남의 어려움을 모르고 돌봐주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빗대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기 관점에서만 결정을 내리는 이들을 흔히 본다. 그리하면 세상은 삭막하고 각박해질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흐뭇하지 않은가.

 

역지사지의 삶으로

한때 중국 시진핑 주석의 가훈이 화제를 모았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논어 위령공편에 나온다.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제가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은 무엇이나요?” 하고 묻자, 공자는 “바로 용서의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화답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도 마땅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선 안된다'고 했다. 내가 상대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으면, 상대방도 내게 머리를 조아리길 바라지 말아야 한다. 상대개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잘 살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떠올려야 함은 물론이다. 무슨 일이든 자기 이익을 취하기 전 한번쯤 다시 생각하고 행동하면, 세상은 훨씬 더 밝아지리라. 서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어디 덧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내로남불'이 판을 친다. 사자성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이 단어는 1990년대 정치권에서 만들어져 일상에서 자주 쓰인다. 남녀의 부적절한 관계를 빗대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는 용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말.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남은 비난하지만 자신에겐 너그러운 사람을 일컫는다. 결국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내로남불은 엇갈리는 논점을 놓고 자신이 유리한 쪽만 택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이다. 이들은 같은 행동을 평가해도 자신과 가까운 쪽은 봐주고, 특정인에 대해선 저격수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남에겐 깐깐하면서도 자신에겐 관대한 사람은 정말 꼴불견이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이런 현상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우리 정치인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정치 극단주의자들의 행태가 심각하다. 이들은 자신이 차별을 당하는 데엔 반발하지만, 정작 자신이 차별을 하는 행위는 정당화하는 이중성을 내보인다. 자칫하면 모름지기 해야 할 반성을 피해가려는 목적으로, 상대를 진흙탕 논리로 끌고가기 일쑤다. '피장파장'을 꾀하려는 술책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중 '내로남불'에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자신도 깨끗하지 못한 주제에, 타인한테 막무가내 수준으로 지적질을 하는 정치인이 많다.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은 이기주의의 '끝판왕'으로 여겨진다.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말도 나온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란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다. 202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수신문이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588명(32.4%, 복수응답)이 '아시타비'를 뽑았다. 교수들의 말을 종합하면, 상당수 정치인이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비난하고 헐뜯는다. 소모적으로 벌이는 싸움만 무성하다고 한다. 교수들은 협업·협치를 통해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자기 눈의 들보부터 빼야

“비판을 받지 아니 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제7장) 예수는 시답잖은 시비를 거는 이들을 향해 일갈했다. 남의 잘못만 탓하려고 들고 자기 과오에 대해선 덮어 두려고 하면, 결국 그 화는 누구에게 돌아갈지를 설파한 경구다.

이제 타인을 비난하기보다는 자기는 정말 괜찮은지부터 살폈으면 싶다. 그래서 나중엔 다른 이들의 실수까지도 감싸안고 같이 웃으며 넘어가면 어떨까. 겨울이 지나가야만 봄은 오는 법이다. 코로나19로 갖가지 어려움을 겪는 터에, 함께 시련을 극복하는 그 날을 기약하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