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국민주권감시단이라는 시민단체가 출범했다. 불량공무원의 공권력 횡포로부터 국민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 시작은 '대통령님께 진정합니다'라는 일간지 전면 광고였다. 강원도의 한 영세 사업장에 근로감독관들이 들이닥쳤다. 껀껀이 “구속하겠다”고 하니 겁 먹은 사업주가 협박죄로 고소했다. 근로감독관들의 복수전이 시작됐다. 이미 퇴직한 직원들까지 찾아내 그 사업장의 법 위반을 파고 드니 벼랑끝에 몰린 것이었다.

▶엊그제 또 하나의 국민신문고식 광고가 떴다. 이번엔 '정세균 총리님께 호소합니다'이다. 광고주는 '공주 양조장 대표'로 적혀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은 농산물의 원산지 위반 단속을 하는 기관인 모양이다. 지난해 9월 이 시골 양조장에 충남농관원 단속반이 나왔다. 1차, 2차 조사에 이어 계속 추가 소명자료를 요구하고 직원들을 소환하면서 7개월째 조사가 끝날 줄을 모른다. 처음엔 주의 조치로 종결한다더니 이젠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그간의 소명 자료만 5000장 분량이다. 이 시골 술도가와 거래했던 정미소들과 담당 세무사무실에서도 자료 일체를 거둬갔다. 단가를 맞추려 수입쌀만 97%를 써야 하는 1300원짜리 막걸리 양조장이 초토화될 지경이라는 하소연이다. 그 지역 언론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시골 양조장 단속 기사가 나면서부터 탈이 난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예전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라던 풍자속언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평생 신분보장의 정규 공무원뿐만 아니다. 경기도 포천과 동두천의 일부 시의원들은 시민들 세금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15주 과정 등록금이 650만원에 이른다. 시민들은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어 죽겠는데 의원 나리들은 시민들 세금으로 서울대 간판까지 달게 됐으니 참 좋겠다는 반응들이다. 그러나 정작 해당 의원은 이렇게 항변했다. “시대가 변했다. 시의회가 4년 전에 했던 일을 그대로 할 이유가 없다.” 무슨 얘긴지. 재작년부터 상당수의 지방의회들에서는 '의원 소송비 지원 조례'를 만들어 두었다. 의정활동이나 해외연수 등의 과정에서 피소된 경우 시민세금으로 소송비용을 대준다는 셀프 조례다. 어디까지 갈 지를 모르겠다.

▶시흥광명 3기 신도시에 땅 투기를 했다는 어느 지방의원 얘기도 있다. 그는 딸 명의로 산 땅에 2층 주택을 짓고 난 뒤 시 집행부를 다그쳤다. 그것도 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주택과와 협력해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택가 안에 있는 고물상들을 치워야 한다.” 속셈은 딸 소유 토지와 맞닿아 있는 기존의 고물상 2곳이었다. 그 고물상들은 무슨 날벼락인가. 사또와 아전뿐 아니라 향교(지방의회)와 나졸들까지 백성들에 올라타는 세상인가.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