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도 이전, 세계 최빈국 한국이 '수출입국'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내다 팔 변변한 물건이 없었다. 가발이 1960년대 대한민국 3대 수출품목 중의 하나가 됐다. 가발 공장이 늘어나면서 부녀자들의 긴 머리를 사들이는 상인들이 시골 마을을 돌아다녔다. 해산물도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우니' 또는 '운단(雲丹)'이라며 일본사람들이 선호하는 성게알 등은 전량 수출로 돌려졌다. 직물 원단이나 봉제품이 그나마 공산품 수출이었다. 훗날 대우그룹으로 큰 대우실업도 이런 품목들로 토대를 닦았다.

▶과연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결과는 창대했다. 합판과 신발 등으로 품목들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선박, 자동차, 철강, 중장비, 원자력발전 시장까지 석권했다. 가발 수출 시절,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고부가 중후장대(重厚長大) 시장들이다. 지난해 한국이 수출 1위를 차지한 품목이 모두 63개에 이른다고 한다. 부동의 1위는 단연 반도체다. 한국은 5년 연속 반도체와 화학연료 수출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30년 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말했다. “우리나라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라고. 이제 우리 기업들은 누가 봐도 세계 1류다. 정치나 행정은, 글세 4류 5류쯤이나 될까.

▶지난 주말 마트에서 꽁꽁 언 냉동만두를 사다 맛을 보았다. 지난 한해 한국 냉동만두가 5089만 달러어치나 수출됐다고 해서다. 그 전 해에 비해 46%나 늘었다. 수출에 나선지 몇년 되지도 않아 김치 수출액의 3분의 1 수준까지 오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제 중국 만두보다 한국 만두를 더 많이 먹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코로나19 시대의 간편식 선호 탓도 있지만 품질 우위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두피가 얇아서 탄수화물이 적고 새우, 김치, 불고기 등 내용물이 다양해 갈수록 인기라고 한다. 그런 자신감에 이제 겉포장에도 중국식 만두 이름인 '덤플링'이라 적지 않고 그냥 '만두(Mandu)'로 수출에 나선다니 놀랍다.

▶라면 수출도 지난해 30% 늘어난 6억362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식품업계에서는 라면, 김치, 만두를 '진격의 K푸드 삼총사'라 부르는 모양이다. 우리 식품업계도 반도체, 자동차 못지 않게 혁신에 매진해 세계 정상급에 올랐다는 반증이다. 진격의 K푸드는 단순히 외화 벌이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 삶의 양식과 정서를 세계 보편의 수준으로 퍼뜨려 나가는 전위대다. 이들 업체들의 주가를 검색해 보고는 더 놀랐다. 과거 마요네즈나 케첩을 만들던 회사의 주가는 60만원, 라면 1위 업체는 30만원을 육박하고 있었다. K푸드, 대단하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