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목표를 향한 창조와 진화의 대서사시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 원시인류가 도구를 발견하는 장면.

“이 임무는 어떤 방해도 받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목성 탐사선 '디스커버리 1호'의 전반적인 기능을 통제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 9000은 동료를 구하러 우주선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 데이브의 명령을 거부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할은 데이브가 자신의 오류를 의심하며 작동을 정지시키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는 자신을 창조한 인간과 맞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인류의 기원과 운명을 조망하며 그 존재 의미를 묻는 심오한 철학이 담긴 SF영화이다. 완벽주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나사(NASA) 연구원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CG도 없이 세트와 시각효과만으로 전대미문의 기념비적인 SF영화를 탄생시키며 미국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다.

니체 철학 개념으로 드러낸 창조와 진화의 비밀

어둠 속에서 들리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음악이 끝난 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달 너머로 보이는 지구에 태양이 떠오른다. 여명이 밝아오는 지구의 대지를 보여주며 창조의 서막을 연 영화는 창조와 진화를 거듭하며 원시시대에서 우주시대로 엄청난 진화적 도약을 한 인류의 역사를 그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조자와 피조물, 즉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조명한다. 특히 니체 철학 개념을 도입하여 창조와 진화의 비밀을 밝힌다.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었던 원시인류는 갑자기 나타난 검은 돌기둥의 신비한 영향으로 도구 사용 등 문명의 지혜를 터득한다. 영역싸움에서 승리한 원시인류가 기쁨으로 포효하며 하늘을 향해 던진 뼈다귀는 순간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우주선으로 바뀌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의 경쾌한 리듬과 함께 화려한 우주시대가 펼쳐진다. 눈부신 과학문명의 발달로 이제 우주로 영역을 확대한 인류는 목성 탐사에 나선다. 디스커버리 1호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목성으로 향하고, 순조롭던 우주비행은 컴퓨터 할의 이상 반응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할은 급기야 인간들을 우주선에서 몰아낼 계획을 세우지만, 데이브에 의해 제압당한다. 데이브가 할의 내부로 들어가 메모리를 하나씩 빼낼 때, 할은 기억의 사라짐을 느끼며 소멸의 두려움을 호소한다. 이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간이 진화하듯, 인간의 창조물인 기계도 진화를 거듭하며 인간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려는 '힘에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우주선에 홀로 남은 데이브는 극비에 붙여졌던 이번 탐사의 진짜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목성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내 신비의 검은 돌기둥이 주변을 배회하는 목성 너머의 빛 터널을 지나 미지의 저편에 있는 기묘한 방에 도착한다. 이제서야 비로소 그는 깨닫는다. 할의 운명이 바로 자신의 숙명임을…

신비의 검은 돌기둥의 등장과 함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또다시 울려 퍼지면서 새로운 여명이 밝아온다.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창조와 진화의 영겁회귀는 계속될 것이다. 위대한 정오를 기다리며…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