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건 “우리 동네 경제를 좀 살려보겠다”는 의지들이 이어져서다.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대형 자본들 말고, 지역에 뿌리를 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 집중해 할인 또는 캐시백 등 각종 인센티브를 설정하는 방식이 지역화폐의 출발선이다. 지역화폐는 지역 소득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게 하는 장치쯤 되는 셈이다. 지역화폐 다른 이름이 '지역사랑상품권'인 이유기도 하다.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지역화폐는 지역 경기 활성화에 더해 '재난기본소득'의 지급 방식이자,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한 도구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역화폐, 전국을 휩쓸다
지난 6월 대구시가 발행한 선불카드 방식 '대구행복페이'는 출시 한 달 만에 580억원어치가 팔렸다. 3달 뒤인 10월 초엔 발행금액 3000억원이 모두 소진됐다. 충전만큼 소비도 적극적이었다. 처음 출시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결제금액은 모두 1594억원으로 판매액(충전액) 대비 평균 이용률은 77.9%를 기록했다. 월별로 살펴본 이용률은 6월 42.3%에 그쳤다가 7월부터 급증해 8월에는 93.8%를 보여 소비 활성화에 상당 부분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전시 '온통대전'도 출시 한 달 보름 만에 26만명이 가입했다. 이는 대전시 성인 인구의 22%에 해당하는 수치다. 세종시 '여민전'은 판매 12시간 만에 7월분(150억원)이 완판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내고장알리미 사이트에 접속해 전국 17개 시·도 지역화폐 현황을 살펴보니, 제주도를 제외한 16개 시·도 권역 지자체들이 각자 지역화폐를 발행해 운영 중이다. 이번 연도 안에 발행 계획이 있는 자치단체까지 따지면 전국 243곳 자치단체 중 229곳에 달하는 몸집이다. 2016년만 해도 지역화폐를 발행한 지자체는 53곳, 2017년에도 56곳에 그치다가 2018년 66곳, 지난해 177곳 등으로 급등세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지역사랑상품권 전국발행의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전국 지역화폐 발행액은 2019년 기준 2조2573억원으로 2017년(3066억원)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렇게 발행 규모가 증가하면 유통 속도가 따라오지 못할 법도 한데, '돈맥경화'에 신음하는 법정화폐와는 다르게 소비되는 속도가 뒤처지지 않는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연간 발행액 대비 환전율은 평균 89%(1조884억원)에 이른다. 환전이란 지역화폐로 물건 대금을 받은 가맹점주가 은행에서 다시 현금으로 바꾸는 걸 말한다. 찍어내는 만큼 소비도 활발하다는 뜻이다.
17개 시·도에서 유일하게 지역화폐를 발행하지 않던 제주도에서도 제주 지역화폐 '탐나는전'의 발행 근거를 담은 조례안이 제주도의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어 제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6일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는 제388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제1차 회의에서 제주도가 제출한 '제주 지역화폐 발행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재상정해 수정 가결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30일 본회의에서 조례안이 통과되면 다음 달 가맹점 모집 등 절차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연내 발행을 목표로 제주도의회와 협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인센티브 무기인 지역화폐, 동네 상권 분석할 주요 데이터로 활용
높은 할인율과 긴급재난지원금 발생 요인인 코로나19 사태가 지역화폐 시장 확장을 주도했다. 인천을 필두로 적지 않은 자치단체들에서 지역화폐 연착륙 소식이 이어졌고 전문가들은 곧바로 지역화폐 경제 효과 분석에 돌입했다. 과거 종이 상품권 수준에서 발전해 카드, 모바일 앱을 통한 간편 결제 방식이 확대되면서 소비자 연령별 지출은 물론 어떤 시기에 어떤 지역에서 어떤 분야에 많이 썼는지 등 자세한 시민들 사용 내역이 지자체 손에 잡히는 것이다.
최근 사례에선 대구시와 대구경북연구원이 다음 달 말까지 '대구행복페이'에 대한 정밀 분석에 나서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대구시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으로 밝히겠다는 방침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도·소매업에서 사용되는 비중이 높다면 민생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분명한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이 펴낸 '지역화폐 도입·확대에 따른 성과분석 및 발전방안'에 따르면 경기도 31개 시·군의 지역화폐가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은 도소매업, 음식점 등 서비스업 부문이었으며 이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는 4901억원으로 집계됐다.
▲걸음마 단계, 수정·보완 사안도
온누리상품권을 부정 환전하는 이른바 '깡'과 같은 행태가 일부 지역화폐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는, 국내에서 지역화폐가 인기를 끌고 활성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하는 잡음 중 하나다. 저렴하게 구매한 지역사랑상품권을 현금으로 되팔거나 담배나 주류 등을 저렴하게 사서 정상가로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지역화폐 깡' 수법이 수면 위로 올랐다. 지역화폐 혜택은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이러한 불법 거래로 인한 금전적 손해 역시 지자체 몫이다.
지역화폐 충전 금액에 대한 안전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권영세(국민의힘·서울용산구)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충전 금액에 대한 운영·관리의 사각지대를 지적하고 행정안전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권 의원에 따르면 현재 지역사랑상품권 충전 시 충전 금액은 대부분 시·도나 시·군·구 계좌에 보관하지 않고 민간운영대행업체 계좌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돈이 어떻게 관리·운용되고 있는지 정부나 지자체가 잘 모른다는 설명이다.
권 의원 측은 “지역사랑상품권은 '화폐'가 아니라 '상품권'이기 때문에 지급보증을 위해 발행 후 계좌에 쌓인 돈을 예금이나 채권에 신탁해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운용하려면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도, 국감 대상인 9개 광역자치단체(서울·경기·경북·강원·광주·대전·충북·울산·세종)를 보면 550억원 질권(담보)설정과 23억원 보증보험이 안전장치의 전부”라고 꼬집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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