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출·명의도용…자립 의지마저 꺾는 범죄 막아야

유령회사 고용보험… 수급 못 받아
소액대출 유혹에 신분증 넘겨주고
휴대폰 깡에 수백만원 청구서 수령
바지사장 명의 주고 빚더미 앉기도
지자체·경찰, 범죄피해 예방 시급
위 사진는 해당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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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노숙인을 표적으로 한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숙인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각종 보호제도의 수혜 대상 자격이 박탈돼 더욱 곤궁한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경기경찰은 노숙인 범죄예방과 관련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노숙인 노린 범죄 횡행

19일 노숙인 보호단체인 '수원 다시서기'에 따르면 상담 및 지원에 들어간 노숙인 10명 중 3명꼴로 상당수가 범죄피해를 겪었다.

7급 공무원 출신 송모(56)씨는 친구의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노숙인이 됐다. 그러던 지난 7월 용기를 내 수원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시작부터 청천벽력이었다. 송씨는 재산이 없고 위기에 처해있어 복지 지원(조건부 수급·주거급여)이 가능한 대상이었는데, 신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느 사업장에 월소득 300만원 규모로 고용보험·국민연금이 가입돼있었다. 송씨는 전혀 모르는 명칭의 사업장이었고, 조사결과 실체 없는 '유령회사'였다.

알고 보니 과거 “노숙인이라도 소액대출을 해 주겠다”고 다가온 남성에게 신분증과 통장을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수수료 40%나 떼이고, 명의도용까지 당하게 됐다.

다행히 센터가 증명 절차를 도와주면서 수급 대상에 선정됐지만, 송씨는 자칫하면 법으로 정한 복지 혜택도 못 받을 뻔했다.

앞서 6월 조사된 노숙인 김모(64)씨는 가출한 아내를 찾아 헤매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 했고, 결국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면서 노숙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천 다리 밑 생활을 전전하던 어느 날, 동료 노숙인이 누군가를 데려와 '휴대폰 깡'을 제안했다. 휴대폰만 개통해주면 현금으로 수수료를 준다는 솔깃한 내용이었다.

김씨는 수차례 거절했지만, 계속된 설득과 150만원 현금을 눈앞에 마주하자 의지가 무너져내렸다. 그 뒤 한 대당 210~240만원에 달하는 청구서가 날아왔다.

억대의 범죄피해에 놓인 노숙인도 있다. 유모(37)씨는 12년 전 노숙 생활 중 지인을 통해 대부업자를 알게 됐고, 꼬드김에 넘어가 '바지사장(명의만 빌려준 사장)'으로 등록했다.

그러자 업자는 유씨 명의로 채무를 떠넘겼다. 유씨는 세금 3억, 은행 대출 등을 합쳐 5억원의 빚더미에 깔린 신세가 됐다.

유씨는 개인파산으로 기회를 얻으려고 했으나, 금액 규모가 워낙 크고 당시 25세의 나이라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센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한 차례 쓰러진 노숙인이 범죄에 이용되면, 또다시 상처를 받아 그나마 남은 자립 의지를 꺾기도 한다”며 “과거부터 매년 발생하는 일인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범죄 예방책 시급

긴 바깥 생활로 심신이 많이 약해져 있는 노숙인들은 일반인보다 범죄에 더욱 노출되기 쉽다.

▲명의도용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불법대출 등 노숙인을 노린 범죄를 전문으로 한 브로커까지 나타나고 있다. 범죄행위는 경찰에게 종종 덜미를 잡히곤 하는데, 문제는 그때뿐이다.

경기경찰은 노숙인과 관련한 별도의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범죄 신고로 인한 수사가 아닌 전반적인 보호는 '지자체 업무'라는 것이 경찰의 인식이다.

현재 노숙인 주요 발생 구역 지구대에 노숙인 업무를 따로 숙지한 직원도 없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위험한 노숙인을 발견하면 쉼터에 인계하는 정도이지, 특화로 하는 부분은 없다”며 “범인 검거·순찰 등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지방경찰청은 5년 전 서울역 등 주요 노숙인 밀집지역 주변 지구대에 전담 경찰관을 두고, 범죄피해를 예방한 바 있다.

/김현우·최인규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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