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경스러운 오만이 부른 비극
▲ 영화 '킬링 디어' 중 스티븐의 딸 킴이 마틴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잖아요. 그게 바로 지금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죠?”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은 미스터리한 16세 소년 마틴의 말에 어리둥절해진다. 스티븐이 가족 중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아내, 딸, 아들이 사지마비, 거식증, 눈 출혈 증세를 차례로 앓다가 결국 모두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틴은 '정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가족에게 비극을 안긴 대가를 치를 것을 그에게 요구한다.

원제가 '신성한 사슴 죽이기'인 영화 '킬링 디어'(2017)는 그리스 출신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영감을 얻어 '속죄양' 모티프로 그려낸 섬뜩한 복수 스릴러 영화이다. 이 영화는 파격적인 스토리텔링, 공포감과 함께 신비감을 극대화시키는 촬영기법과 사운드의 운용, 그리고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의 인상적인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수많은 찬사와 함께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속죄양' 모티프를 통해 시도한 신과 인간의 화해

슈베르트의 '스타바트 마테르' 음악이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심장수술 장면이 서서히 줌 아웃된다. 이어 수술복을 벗는 스티븐의 모습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수술복과 수술 장갑이 클로즈업되면서 경건한 분위기의 음악과 대조를 이룬다. 이 오프닝 장면은 '신화 시대'와 '종교 시대'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과학 시대'의 탄생과 더불어 생명의 신성함이 사라진 오늘날 물질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그리스 신화 속 '속죄양' 모티프를 차용하여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깨져버린 관계를 복원하는 신과 인간의 화해를 시도한다. '과학 시대'의 현대인을 대변하는 인물인 심장전문의 스티븐은 마틴의 아버지의 죽음이 수술 전 음주로 인한 의료과실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틴이 그의 가족에게 건 복수의 저주가 현실로 나타나는데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그로서는 마틴이 지닌 신비스러운 힘의 존재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틴의 말대로 사지마비와 거식증을 앓는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최첨단 의료장비로 검사를 받게 하고 마비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과학적인 병인(病因)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딸마저 아들과 같은 증상을 앓게 되자 절망한다. 아내가 무릎을 꿇고서 마틴의 발에 키스하며 그를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데 반해, 스티븐은 마틴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대신 오만하고 폭력적인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마틴에 의해 감금된 딜레마의 미궁 속에서 헤매던 그는 막다른 길에 들어서자 그만 주저앉아 울먹인다. 그리곤 모자로 눈을 가린 채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성한 사슴을 죽인 대가로 딸 이피게네이아를 속죄양으로 바쳤듯이, 결국 스티븐도 아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옛 신화의 길을 따른다.

이로써 '불손하고, 불순하고 불경스러운' 과학 시대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신화 시대, 종교 시대의 도래가 다가온다. 그리고 인간의 오만함이 초래한 비극의 대물림도 종지부를 찍는다. 우주 중심에 있는 '생명의 나무' 아래서는 마틴과 스티븐의 딸 킴이 부르는 화해의 노래가 들린다. “불을 붙여요. 우리가 인류의 기원인 것처럼...”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