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구름의 마음과 돌의 얼굴(雲心石面)이라는 제목과 <내가 만난 작품 내가 만난 작가> 그리고 <김용원 아트 컬랙션(1966~2020)>이라는 부제가 붙은 산뜻한 단색화폭을 연상시키는 표지의 414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자를 받아든 것은 지난주 금요일 조찬 모임이었다. 저자가 1993년에 시작한 조찬 강연과 문화·예술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한강포럼 월례모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포럼답게 각계각층 특히 문화·예술계 분들이 많이 나오는 모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지적 욕구는 식지 않는데 독서속도와 기억력이 감퇴되고 있어 서점에서 구입한 책들과 증정 받은 책들이 서가에 쌓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가깝게 알고 지내던 분들의 자서전이나 자전적 경험이 쓰여진 책자들은 읽는 속도도 의외로 빠르고 흥미있어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읽게 되는게 상례다. 내 자신이 이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지내왔지만 자서전적인 책을 읽다보면 모르던 면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용원(85) 회장은 조선일보 선배되는 분이다. 입사할 때부터 국제부를 지원하여 근무하다가 파리 특파원으로 나갔기 때문에 경제부 쪽에서 줄곧 근무하다가 부장을 거쳐 편집국장까지 지낸 김 선배를 가깝게 보필할 기회는 없었지만 능력과 인품과 취향이 어떤 분인가를 멀리서라도 감지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선배였다. 회사를 나온 후에 오히려 김 선배와 국내외 여행도 함께 하게 되고 한강포럼을 통해 자주 만나게 된 계기도 신문사 근무 시 무언의 교감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 선배가 수준있는 미술품 수집가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수집가로서의 안목과 자세가 남다르다는 것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국 미술계 중진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이흥우(1928~2003) 선배는 김 회장의 미술계 입문에 길잡이를 했던 분으로 두 분의 이심전심적 교유관계가 미술작품 수집의 밑바탕이 되었다.

▶반 세기가 훌쩍 지난 김 회장의 미술품 수집은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현대 한국미술사와 궤적을 함께 하는 살아있는 한국미술의 역사다. 첫 작품 구입이 고교시절 미술교사였던 박상옥 화백의 '안개꽃'이었다는 사실도 감동적이지만 1974년도에 천경자 화백의 아프리카 기행을 마련했던 장본인이 김 회장이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프랑스 특파원으로 있던 필자는 아프리카를 다녀온 천 화백과 파리의 미술관들과 화랑들을 며칠동안 순방했던 기억이 새롭다. 현대 작가의 유화작품을 시작으로 판화와 조각, 그리고 민예 작품과 도자기까지 연결된 수집경력이 다채롭기도 하지만 폭 넓고 깊음에 머리가 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