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못들었다, 공룡발자국 지나칠까봐

경기창작센터 농작로 따라 가면
봉분·비석 하나없는 선감묘지 나와
묵념한 뒤 녹음 짙은 가로수길 산책
탁 트인 불도방조제서 바다 구경도
공룡발자국·화석 발견된 탄도지층
가는 길은 험난하니 각별히 주의를
선감어촌마을 전경.
선감어촌마을 전경.

1000년의 무구한 경기 역사가 경기만 소금길을 걷는 걸음마다 느껴진다. 섬의 크기 만큼이나 깊은 역사와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는 대부도에서의 도보 여정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경기창작센터에서부터 누에섬까지 이어지는 경기만 소금길 9구간은 경기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경기만 소금길 9구간

○경기창작센터-선감묘지-불도방조제-대부광산퇴적암층-탄도지층-누에섬
○거리 : 9.1km
○난이도 : 하
 

경기창작센터 모습./사진제공=경기만에코뮤지엄
경기창작센터 모습./사진제공=경기만에코뮤지엄

#국내 최대 예술 레지던시 경기창작센터

예술인들의 공간인 경기창작센터에서 경기만 소금길 9구간 여정이 시작된다. 경기창작센터는 2010년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과 연구 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선감도 (구)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총 28개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는 이곳에서 시각예술, 공연, 음악, 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입주 작가들이 진행하는 예술교육이 특화돼 있으며,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예술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디자인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2016년 경기도와 안산, 화성, 시흥시가 업무협약을 통해 경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의 다양한 역사, 문화, 자연 자원들을 발굴, 보존하는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기창작센터는 경기만 에코뮤지엄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들이 작업한 선감어촌마을벽화.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들이 작업한 선감어촌마을벽화.

경기창작센터에는 상징적인 인물이 있다. 미술동인 ‘새벽’과 수원미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2000년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에 입사해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등 경기도의 문화예술 진흥사업에 힘써 온 故 최춘일 선생이다. 그는 경기문화재단 문화협력실장, 경기창작센터장, 수원문화재단 이사직을 수행하며 경기도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 속에 예술을, 예술 속에 자연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故 최춘일 선생은 경기만 정체성 회복과 지역 활성화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경기만 에코뮤지엄’ 컬렉션 100에 선정된 주요 인물이다. 
 

묘역을 밟지말라는 푯말과 함께 놓여있는 선감묘지 모습. 선감묘지에는 수백구의 선감학원 피해자가 잠들어 있다.
묘역을 밟지말라는 푯말과 함께 놓여있는 선감묘지 모습. 선감묘지에는 수백구의 선감학원 피해자가 잠들어 있다.

#슬픈 역사 잠들어 있는 선감묘지

경기창작센터에서 농작로를 따라 걷다보면 봉분도 묘비도 없는 풀무지 하나가 등장한다. 이곳은 선감학원 희생자들이 안치된 묘역이다. 선감묘지에서는 많은 희생자의 유해와 유품이 발견됐다. 지금도 수백 구의 영혼이 선감묘지에 잠들어 있다. 억울하게 땅속에 묻힌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이곳에서 위령제와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슬픈 역사가 잠들어 있는 이 곳 마을은 한없이 고요하다.

선감어촌마을 주변으로 이어진 갯벌을 따라 걸으면 평온한 바다의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대부해솔길 6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표식을 따라 가다보면 경기도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녹음이 짙은 가로수 길이 매력적이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걷는 길에 운치를 더한다. 바다전망대에서는 선감도와 제부도, 말부흥 마을의 끝머리가 보인다. 날씨가 좋을 땐 충남 당진까지 내다볼 수 있다. 전망대 인근에는 불도방조제가 있다. 불도방조제 위에서 내다본 탁 트윈 바다 전경은 가슴을 파고든다. 방조제 길은 자연스럽게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을 내려오면 횟집이 즐비한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안산 대부광산퇴적암층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곳이 많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탄도지층/사진제공=경기만에코뮤지엄

#살아 움직인 지구 보여주는 탄도지층

1999년 대부광산에서 암석을 채취하던 중 약 1억년 전 초식공룡인 케리니키리움의 공룡 발자국 1족이 발견됐다. 이후에도 총 23개의 공룡발자국 및 식물화석이 발견됐는데, 이 중 상태가 양호한 9개의 화석을 안산시가 보관하고 있다. 이 곳은 퇴적층을 구성하는 많은 층리의 색깔 및 두께의 변화 등을 고려해 볼 때 당시 호수 지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003년 경기도 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된 대부광산 퇴적암층은 서울 근교에서 유일하게 중생대 지질층과 화산 암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화성의 시화호 공룡알 화석지(천연기념물 제 414호)와 함께 당시의 식생 및 환경을 판단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지질층이다. 퇴적암층 전망대에 오르면 내려다보이는 퇴적암층과 호수의 풍경, 탄도, 누에섬을 아우르는 탁 트인 전망이 절경을 이룬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도로를 건너 펜션 단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누에섬 입구까지 이어진 길은 평탄하진 않지만 넓게 조성돼 있어 트레킹하기가 수월하다. 누에섬 입구에서는 탄도지층을 감상할 수 있다. 탄도지층은 화산재가 내려앉아 흙과 모래가 굳으면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응회암 퇴적층이다. 오랫동안 갯벌에 묻혀 있던 탄도 지층은 시화호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거세진 조류에 의한 해안침식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다가 최근 2.5km에 달하는 온전한 모습을 나타냈다. 얇은 석판을 겹겹이 쌓은 듯 퇴적 구조가 선명히 보이는 붉은 암석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층의 절개 단면들을 통해 다양한 지질학적 침식과 퇴적 현상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을 비롯한 각종 동식물 화석들은 경기만 일대 지각판이 중생대부터 적도, 호주지역에서 흘러 올라왔음을 보여준다. 1억 년 동안 생생히 살아 움직인 지구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학술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영상제공=경기창작센터

 


 

[길위에서 만난 사람] 전문국 경기창작센터 센터장

"경기창작센터, 예술인 발굴·지원 힘써 서남부권 거점 문화공간 만들겠다"

경기창작센터 전문국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경기창작센터 전문국 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람, 공간, 콘텐츠가 있는 경기창작센터가 경기 서남부권의 거점 문화공간이 될 것입니다.”

올해 7월 새롭게 부임한 경기창작센터 전문국 센터장은 10일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부임한 지 두 달 남짓이 됐습니다. 도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코로나 종식 이후 콘텐츠 개발에 전념해왔습니다.”

전 센터장은 경기창작센터가 경기 문화예술인들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예술인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창작센터가 가장 주력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는 경기도 신진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신진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전시를 지원하고 예술인들의 네트워크 형성에 조력하는 일을 하고 있지요. 현재 경기창작센터에는 30명의 입주 작가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창작센터는 예술인 지원 외에 선감학원 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경기창작센터가 옛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만큼 신고센터를 운영해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현재 피해 생존자분들을 대상으로 미술심리치료 등을 진행하면서 다친 마음을 위로하고 치료하고 있지요. 또 선감학원 추모문화제를 매해 기획하고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오는 19일부터 온라인 문화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재직한 경력만 도합 15년. 전 센터장은 그의 이력을 십분 활용해 경기창작센터 내 새 바람을 불어 넣을 것을 예고했다.

“국내 최대 규모 예술레지던시 명성에 걸맞은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민들과 상생이란 부분을 가장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요. 대부도 주민들과 연계한 관광, 문화 콘텐츠로 경기도민을 맞을 생각입니다. 또한 경기 문화예술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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