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경기만의 소금

소금 생산지·지리 요충지 '경기만'
삼국시대엔 탐내다 못해 각축전도
1965년 염전 85% 위치 최다 생산
싼 중국염·개발 밀려 줄줄이 폐전
소금가치 보존하려 체험장 탈바꿈
7월15일 무더위 속에 소래염전에 소금꽃이 피고 있다.
7월15일 무더위 속에 소래염전에 소금꽃이 피고 있다.

혹자는 수억만 년 전부터 이 땅에 존재해온 바닷물을 ‘생명의 고향’이라 부른다. 생명을 담은 소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금은 인간의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중요한 자원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소금은 금처럼 귀하다 해 ‘작은 금’ 또는 ‘하얀 금’으로 불리기도 했다. 열강이 침략을 일삼았던 경기만 일대는 최적의 소금 생산지로 유명했다. 한반도의 중심인 경기만을 차지하는 자가 양질의 소금 또한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경기만 일대의 소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개발에 떠밀려 경기만의 염전들이 하나, 둘 폐전됐기 때문이다. 잊혀진 경기만 소금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소래염전 내 소금창고 내부 모습.
소래염전 내 소금창고 내부 모습.

왕실 진상품이었던 화성 남양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소금은 인류의 삶과 밀접한 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금은 귀한 자원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소금이 생산됐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해안가 유적지 부근에 남아있는 ‘화덕’의 흔적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소금이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기록을 통해 오래 전부터 소금이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이 짐작된다. 삼국유사에 ‘소금이 시주되었다’는 기록과 삼국사기에 ‘고구려 본기 미천 왕조에 왕이 젊었을 때 소금장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에 군현을 설치한 기록을 토대로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시 서해는 지리적 요충지면서 소금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지역이었다. 특히 경기만 일대는 소금 산지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고대사회의 국가적 관심지였고, 소금을 매개로 해상 교역망을 장악하고 정치적 성장을 꾀했던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경기지역에 인구가 늘면서 인천 뿐만 아니라 경기 해안의 소금 생산도 증가했다. 경기만의 가장 대표적인 소금 산지는 화성 남양이었다. 남양염은 지형적인 특성상 양질의 소금을 얻는 것이 가능했다. 왕실에서는 순도 높은 남양염을 진상품으로 받을 만큼 남양염은 우리나라 최고의 소금이었다. 화성시사(史)에 따르면 1906년 화성지역 소금 생산량이 2만8000여석 정도됐다. 생산된 소금들은 지금은 매립지가 되어 사라진 마산포를 통해 서울과 인천 등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주안염전의 옛 모습./사진제공=인천광역시 남구청

사라져 가는 경기만 염전

1965년 당시 우리나라의 염전 면적은 약 2000㏊로 이 가운데 85%가 경기와 인천지역에 몰려 있었다. 특히 군자염전과 남동, 소래염전 등은 전국 염전 규모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많은 소금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전국 염전의 90% 정도가 전남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에 천일제 염법이 도입되기전까지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전통 제염법인 ‘자염(煮鹽)’이 성행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일제에 의해 소금 생산 방식이 바뀌면서 품질 좋은 천일염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중국염이 대거 수입되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를 막고 생산량을 늘릴 목적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 결정체를 만드는 ‘천일염(天日鹽)’을 도입했다. 현재까지 인천과 경기, 충남, 전북, 전남 등에서 천일염이 생산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천일제염이 도입된 인천의 ‘주안염전’은 개항직후 일제에 의해 1907년 축조됐다. 천일제염은 자염의 방식보다 생산비가 적고 양질의 소금을 얻을 수 있어 주안염전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1933년 주안, 남동, 소래 세 곳의 염전은 전국 생산량의 절반인 15만톤을 생산했다. 경기만 염전이 소금의 최대 산지로서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주안염전은 1973년 공단 조성을 목적으로 매립돼 현재는 표지석만 남아있을 뿐 모두 사라졌다. 현재 경기만의 염전들은 산업단지와 아파트촌, 비행장 등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소래염전을 찾은 어린이들이 소금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소래염전을 찾은 어린이들이 소금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소금 가치 보전 위한 관광 명소화

현재 경기만 일대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곳은 화성 ‘공생염전’이 유일하다. 공생염전은 6·25전쟁 당시 월남한 사람들과 철원지역 피난민 55세대가 간척한 곳으로 남양만 바다에 880m의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1세대 피난민 6명이 소금창고 1동을 공동소유해 작업하는 방식으로 자치조합을 결성, 염전을 운영해 왔다. 공평하게 소금판을 분배하고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로 공생염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60여년간 천일염을 생산하며 경기도만의 염전산업을 이끌어 온 공생염전도 개발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현재 공생염전 15곳 중 7곳이 폐업, 휴업 상태에 놓여있다.

이처럼 우리 염업과 제염기술, 염전의 가치가 사라져가고 있는 가운데 경기만의 ‘소래염전’은 소중한 자원이 됐다. 시흥 갯골생태공원 내 위치한 소래염전은 인천 남동구 논현동과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포동, 월곶동, 장곡동에 걸쳐 있던 국내 최대 규모의 염전이었다. 일제에 의해 1937년 준공됐지만, 소금산업이 사양화되면서 1996년 폐염됐다. 소래염전은 염전을 짓기에 최적의 입지를 갖춘 곳이다. 조간대가 넓고 평탄하며 갯벌의 토질이 점토와 모래를 절반씩 구성하고 있어 물을 증발시키기에 적합했다. 또, 조수간만에 차가 커 물을 증발시킬 시간이 충분하고 염도 또한 높았다. 수인선 철도를 통해 인천항과 수도권으로 물류 운송이 가능했다는 점은 소래염전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과 중국산 천일염 수입 등으로 소금값이 폭락하면서 소래염전은 폐염됐다. 소래염전이 다시 문을 연 건 2005년부터다. 시흥시가 소래염전을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면서 일대는 관광 명소화 됐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류창호 연구원은 “한때 왕실에 진상되던 화성 남양염 등의 가치 보존이 되지 않아 무척 안타깝다”며 “중국산 소금에 밀려 국산 소금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역사를 간직한 품질 좋은 우리 소금에 대한 기록이나 흔적을 남기는 일은 후대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영상제공=시흥에코뮤지엄

 


 

[인터뷰] 소래염전의 산증인 김연순 염부

"무수한 기계 생겼지만, 여전히 소금은 사람 손 안 거치곤 못 만들죠"

소래염전 김연순 염부반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소래염전 김연순 염부반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하늘이 둘로 나뉜 듯 투명한 염판 위를 노니는 흰 구름과 귀퉁이에 눈처럼 소복히 쌓인 소금의 전경들이 제법 조화를 이룬다. 15일 무더위 속 소래 염전은 제염 작업이 한창이었다. 소금 꽃이 핀 광활한 소금밭을 배경으로 영락없는 염부의 자태를 드러낸 이는 소래염전의 터줏대감 김연순(78) 염부반장이다.

김 반장은 소래염전에서만 60여년 동안 소금을 만들었다. 소래염전의 모든 역사를 줄줄 꿰고 있는 그를 두고 이웃들은 소금 역사에 산증인이라 부른다. 김 반장은 1942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백령도와 대청도를 거쳐 시흥 포동으로 건너왔다. 그는 17살이 되던 무렵, 아버지를 따라 시작한 염전 일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배를 곯는 일이 많아지면서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아버지를 따라 염전에 나갔습니다. 당시 소래에서 만들어진 소금을 인천 연안부두까지 출하해야 했기 때문에 소금을 짊어 나르는 일부터 했지요.”

염부들은 1년 중 3월부터 겨울이 오기 전인 10월까지 작업한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같은 때가 가장 바쁜 시기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 해가 지고 나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던 염부들은 10시간을 꼬박 염판 위에서 소금과 씨름해야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날 다시 소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전기가 없던 시절엔 촛불을 켜놓고 만들어진 소금이 다 걷어질 때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염부들이 하는 일 중 가장 고된 일은 ‘목도’다. 목도는 양쪽에 광주리가 달린 장대를 메고 염판 소금을 소금창고까지 옮기는 일이다. 한 광주리당 70근씩 140근을 수차례 운반해야 하는 일이라 무척 힘든 작업이다.

“소금과 땀이 얽혀서 짓이겨진 어깨 위엔 항상 깊은 상처가 생겨나곤 합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어깨에 구더기가 난다고 할 정도로 목도하는 일은 염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이지요.”

흔해져 버린 소금이지만 소금을 얻기 위해선 여전히 사람의 손이 닿아야 한다. 산업화로 무수한 기계 장비들이 생겨났지만 좋은 소금을 얻기 위해선 숙련된 전문가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계로 할 수 있는 건 물을 길어 올리는 정도입니다.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소금을 만들 수 없어요. 기후 변화나 여러 가지 변수들을 감지해 미리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마음 놓고 쉬질 못했습니다. 시시각각 꼼꼼히 관리해야 좋은 소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60~70년대만 해도 소래염전은 소금 생산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 소금이 밀려 들어오면서 국내 천일염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결국 소래염전은 1996년 폐염을 하게 됐고 염부들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

“여러 산업이 생겨나면서 염부들이 빠져나갔고, 남은 염부의 임금은 더 높아져 갔습니다. 거기에 수도권이 도시화 되면서 문 닫는 염전이 하나, 둘 늘어났지요. 소래염전도 문을 닫았다가 2005년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이때부터는 소금 유통이 아니라 체험프로그램으로 소금을 생산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10명의 염부들과 하던 일을 지금은 4명이서 하고 있습니다.”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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