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6개월간 12.9% 실직
노동자·소상공인 등 생존위기 직면
우리나라 복지체계 허술함 드러나

국민들 긴급 재난지원금 통해
일차적인 소득 안전망 중요성 체감

이재명 지사가 쏘아올린 기본소득
정치권·차기대선 핵심의제 떠올라

 

기본소득, 고단한 삶에 비바람 막아주는 사회안전망으로

코로나19 등의 긴급재난 상황은 우리나라 복지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특수형태 고용종사자, 여성, 청년, 노인, 실업자 등 노동환경이 불안정할수록 공포감은 컸다.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인 지위에 있던 노동자의 공포는 다소 덜했지만 해고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은 새로웠다. 아주 적은 금액이고, 일시적이지만 국가가 일차적인 소득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동시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망 논쟁을 유발했다. 대표적으로 기본소득제가 있다. 이미 정치권의 핵심의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근현대 사회를 관통한 '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의문을 던졌다.

▲ 경기도는 지난 4월 27일 오전 경기도청 신관 앞에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슬기로운 소비생활 31개 시·군 데이트’ 출정식을 열었다. /사진제공=경기도청
▲ 경기도는 지난 4월 27일 오전 경기도청 신관 앞에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슬기로운 소비생활 31개 시·군 데이트’ 출정식을 열었다. /사진제공=경기도청

▲코로나19로 민낯 드러낸 사회안전망

근현대 사회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노동이 구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을 통해 사회는 덩치를 키웠고, 이는 곧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가 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안전망의 근간도 노동성 유지가 핵심이다. 노동자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탓이다. 노동자가 일을 못 하면 소비도 자연 줄어든다. 위축된 경제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가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성장'이라는 희망을 제공하면서 사회를 유지해왔다. 비정규직에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정규직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혹은 지금의 상황이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회 전체가 멈출지 모른다는 위협이 나왔다. 집단 감염 위험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사회안전망이 불안정한 국가와 계층에서 문제가 두드러졌다. 사회안전망을 잘 갖췄다는 일명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의 환상이 걷히자 비로소 세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일부 국가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고, 유가는 급락했다. '인권'을 중시한 나라도 감염 공포감에 무력했다. 각 나라는 빗장을 내려 통제했다.

특히 평등하게 다가온 재난이지만 우리는 불평등했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던 프리랜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거리두기, 아프면 쉬기 등의 대안은 공허했다.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아파서 쉬겠다는 말도 못했다. 돌아갈 자리가 없는 탓이다. 그런데 당장 일할 수도 없는 노동자도 다수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일을 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삶이 흔들린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고립은 사회적 고립이자 사망선고나 마찬가지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22일 발표한 '코로나19와 6개월 직장생활 변화'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 6개월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12.9%다. 임시직,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중 실직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26.3%다. 정규직 중 실직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4%다. 양자의 격차는 약 6.6배다.

실직 경험은 남성(9.8%)보다 여성(17.1%), 월급 500만 원 이상 노동자(2.5%)보다 월급 150만원 미만 노동자(25.8%), 사무직(4.6%)보다 생산직, 서비스직 등 비사무직(21.2%)에서 더 많았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직 종사자(20.4%)가 사무직(4.6%)보다 실직률이 높았다.

지난 6개월간 실직을 경험한 응답자 중 한 달이라도 실업급여를 받았다고 답한 경우는 24.0%에 그쳤다. 이중 절반(50.0%)은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경우라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가 여실히 드러났다. 26.5%는 고용보험이 있지만 수급자격을 충족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경우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의 여파로 사회안전망 재구축하자는 여론이 나왔다.

기본소득 도입에 앞장선 경기도는 “소비절벽으로 수요공급 균형이 무너져 경기불황이 구조화되는 포스트 코로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재정을 소비역량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며 “수요공급의 균형을 회복시켜 경제 선순환을 만드는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경제정책”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재난과 위기는 가난한 이들, 취약한 계층에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오기 마련”이라며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지원과 도움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차기 대선 의제 '기본소득제'

기본소득제가 차기 대선 의제로 떠오를 수 있는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사회' 논의가 깔렸다. 국민은 그동안 모호했던 기본소득 개념을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한 의미를 알게 됐다.

기본소득제는 재산·노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빈곤선 이상으로 살기에 충분한 월간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미 수백전부터 도입 주장이 나왔고, 근현대의 많은 사상가도 유사한 개념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비주류에만 머물렀다.

우리나라는 기본소득네트워크와 이재명 경기지사를 중심으로 언급됐지만 그동안 기본소득 논의 수준에만 머물렀다. 공론화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급변했다.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단계인 탓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이미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이제는 누가 의제를 선점하고 공론화하느냐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이는 국가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면서, 이를 사용해본 국민이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돈의 의미를 알게 된 측면이 크다. 즉 막연한 게 아니라 손에 잡히는 정책이 된 셈이다. 이제 기본소득이 인간이 받을 기본권리라는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진 정치평론가도 “코로나19 때는 정책 논쟁이 없었다가 (어느 정도 수습된 이후)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또 앞으로 비대면 사회 실행방안도 거론되는데 이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4차산업 혁명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오게 됐다”며 "이를 모두 고려한 게 바로 기본소득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그 의제를 선점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 시행 경제효과는

경기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BC카드 매출 데이터를 활용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효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년 동기 매출을 100%로 가정했을 때 재난기본소득 가맹점의 매출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시작된 15주차(4.6~4.12) 118.2%를 시작으로 17주차(4.20~4.26) 140%, 20주차(5.11~5.17) 149%로 6주 평균 39.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비가맹점은 15주차(4.6~4.12) 85.0%를 시작으로 20주차(5.11~5.17) 87% 등 같은 기간 동안 6주 평균 11.5%가 감소했다. 두 비교군 간의 매출액 증가율 차이가 51.2%p가 난 것이다.

같은 기간 BC카드의 카드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6주 평균 6%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시작된 15주차(4.6~4.12)에 97%를 기록한 카드 매출은 16주차 102%, 17주차 108%, 18주차 109%, 19주차 114%, 20주차(5.11~5.17) 106%로 증가세를 보였다.

경기연구원은 또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액이 1인당 1만원 증가할 경우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의 매출액 증가율이 얼마나 되는지 고정효과 패널 회귀분석 모형(FE. Fixed Effect Model)을 통해 분석한 결과 4.3%p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같은 방법으로 재난기본소득 지급액이 1인당 1만원 증가할 경우 지역화폐 가맹점의 신용카드 매출액은 10.4%p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경기연 관계자는 “연매출 10억 이하의 소상공인, 전통시장 점포 등으로 구성된 재난기본소득 가맹점의 매출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기도는 지난 8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전액 소비와 매출로 연결됐기 때문에 실제로 복지정책보다는 효과가 컸다”며 “(추가) 재난지원금에 각별한 관심을 부탁한다”고 건의했다.

 

▲ 세계은행 “세금 누진성 낮은 나라에서 기본소득 긍정적”

세계은행이 우리나라와 같이 세금 누진성이 낮은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보장제도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기본소득이 노동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우려,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리라는 우려는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즉 기본소득이 고용 불만 문제 등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정훈(시대전환·비례) 국회의원은 세계은행이 중·저소득국가 10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네팔, 러시아, 모잠비크, 브라질, 아이티, 인도, 인도네시아, 칠레,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모의실험을 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 의 요약본을 지난 9일 배포했다

조 의원은 세계은행 동유럽 지역국 거버넌스 선임 전문관,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 등 세계은행에서 16년간 일한 전문가다.

해당 요약본을 보면 세계은행이 이들 10개국의 공공부조(취약 계층의 최저생활 보장을 위한 소득보장 제도) 예산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모의실험을 실시한 결과 이들 국가의 소득 최하위 20% 인구 중 70%가 이득을 보고, 전체 인구 중에서는 92%가 이득을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결과는 국가 예산이 종전과 같은 상황(예산 중립적)을 가정한 실험을 통해 나왔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증세가 이뤄진다면 더 큰 효과가 나올 수 있음을 추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같은 실험 결과가 일부 복지 프로그램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거나, 간접세만을 기본소득 세원으로 삼아도 된다는 평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세계은행은 “세금의 누진성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것”이며 “사회보장이 고르지 못하거나, 심지어 역진적인 나라에서는 누진적 소득세나 에너지 보조금 폐지, 불로소득 재분배를 통해 기본소득 지급률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소득 도입시) 특정 집단을 선별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한들, 핵심적인 논쟁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서는 속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세계은행은 “기본소득을 충분히 지급하기 위해서는 부유층 과세를 크게 늘리거나, 세심한 공공지출 개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