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본주의, 해법은 '마르크스 다시 읽기'

세계적 석학이자 이 시대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의 <공산당 선언 리부트>가 출간됐다. '지젝과 다시 읽는 마르크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2018년)을 맞아 <공산당 선언>의 현재성을 되새기고자 그에 부친 서문을 책으로 엮었다. 1884년 나온 <공산당 선언>은 현대 세계사에 미증유의 영향력을 끼친 독보적인 저작인 동시에 더는 유효하지 않은 지나간 사상 고전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과연 <공산당 선언>은 과거의 유산에 불과한 것일까.

지젝은 이 책에서 변증법적 역설을 통해 <공산당 선언>이 지닌 현재성을 거뜬히 증명해낸다. 반복되는 경제 위기, 현실 사회주의의 모순 속에 지젝은 마르크스의 말이 아닌 그의 행동, 그가 가리킨 방향에 주목한다.

▲끝이 다가온다…다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를 맴도는 것은 어떤 유령인가?' ▲의제자본과 인격적 지배로의 회귀 ▲가치 증식의 한계 ▲자유의 탈을 쓴 비자유 ▲공산주의의 지평 등 6개 항목으로 나뉜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당면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환기하며 4차산업혁명의 장밋빛 미래, 선량한 자본가가 감추고 있는 착취를 가시화한다. 마르크스를 이 시대에 걸맞게 호명하는 지젝의 논리 안에서 공산주의는 실패한 해결책이 아닌 진행형의 '문제'로서 의미를 얻는다.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처럼 떠오른 협력적 커먼즈의 성장은 '일반 지성의 사유화'라는 전에 없던 위험을 동반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착취는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흔히 이야기되지만, 여기에서 지젝은 '공정'해지려는 시도, 착취를 없애거나 제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상품화로 귀결되고 마는 비극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개인이 시장 주체로서 평등하다는 환상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자발성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투자를 위한 대출과 생계를 위한 대출의 차이는 간과되곤 한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이른바 사회적 의식이 있는 기업가들을 글로벌 자본의 가장 '진보적인' 얼굴, 바꿔 말해 '위험한' 얼굴이라 지칭하는 지젝의 경고는 서늘하다.

지젝은 희망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에 <공산당 선언>이라는 한때 잊혔던 희망을 재조명한다. 마르크스가 시대착오적이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부르주아계급은 세계시장의 착취를 통해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세계주의적 성격을 부여했다”라던 마르크스의 서술은 지젝의 탁월한 해석을 통해 혁명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고 유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단순히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층 교묘하게 강화된 착취로 노동자의 저항과 연대가 어려워진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해법을 찾고 싶은 독자들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선언'이다.

“역설적이지만, 오늘날 마르크스에 충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해제' 중에서 84쪽)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