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찾은 건강한 한끼

 

▲ 변무숙 애보박물관·한국전통음식박물관 관장이 채식전문 레스토랑 `더 비기닝'을 찾았다.

발효와 채식의 공통점은 `슬로우'

-변무숙 애보박물관-전통음식박물관 관장

 

“애보박물관을 설립한 고(故) `구암(龜巖)' 황형택 관장님은 우리 생활공예품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대단하셨어요. `애보(愛寶)'는 `보물을 사랑한다'는 의미와 함께 `애'는 아이의 줄임말로 `아이들은 보물'이라는 뜻도 담겨있어요. 30년 가까이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유물이 3000점이 넘고 그런 우리 전통공예문화를 아이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지요.”

인천의 사설박물관 1호로 2009년 7월 개관한 애보박물관 변무숙 관장이 인천 중구 개항로에 있는 채식전문 레스토랑 `더 비기닝(The beginning)'을 찾아 전통공예품과 발효음식, 채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보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인 구암관은 토기와 도자기, 금속, 자수, 목공예, 죽공예, 석조공예 등의 유물로 꾸며져 있어요. 기획전시관은 1년에 한 번씩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 요즘은 조선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목가구와 민화를 전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휴관 중이어서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애보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한국전통음식박물관은 2012년 5월에 개관했다.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발효음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교육을 통해 전통음식을 만들고 먹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발효는 과학'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요즘은 전통방식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는 공간이 없잖아요. 해마다 11월 말부터 메주를 2000개 정도를 만들어요. 한달정도 발효를 시켜 음력 정월장을 담그는데 50~60일 지나면 된장과 간장이 분류돼서 나오지요. 항아리에 담긴 된장, 간장은 바람과 햇볕으로 익히는데 항아리가 숨을 쉬면서 자기안의 나쁜 균들은 밖으로 버리고 밖에 있는 좋지 않은 물질은 차단하죠, 숙성 과정에 아이들이 참여하고 가을에 익은 된장, 간장을 퍼가요.”

현직 법무사로 일하고 있는 변 관장은 1978년 인천지방법원 동인천등기소에 발령받았고 황 관장은 법원 동료로 같이 일하다 1994년에 법무사로 함께 독립했다.

“결혼식을 법정에서 올렸어요.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퇴장할 때 깔리는 융단부터 촛대, 성혼선언문 등을 예식장에서 빌려와서 치렀지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에요. 남편은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분이셨어요. 유물을 구하러 전국 곳곳을 함께 다녔는데 좋은 도자기를 얻게되면 목욕도 시켜주고 끌어안고 자기도 했지요. 특히 아이들이 오락게임에 몰두하는걸 보고 `우리 것'을 가르쳐야한다고 강조하실 때는 사명감같은게 느껴지곤 했죠. 유물 구입과 박물관 건립에 적잖은 비용이 들었고 운영비도 만만치 않아요. 박물관이 공익적인 면도 있지만, 운영을 위해 수익도 필요하거든요. 특히 미국에서 미술전공으로 10년 넘게 공부한 딸이 박물관을 실제 끌고 가고 있는데 아버지의 뜻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관람객을 받을 수 없고 전통음식 체험교실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변 관장은 한국전통음식박물관을 소개하는 도록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육식보다 채식이 몸에 좋다는 말은 잘 알고 있어요. 동물성 음식을 주로 먹게되면 피가 탁해져서 암이나 심장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는데 채식을 하면 피가 맑아지고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면 변비도 예방할 수 있어요. 특히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 대신 야채와 발효식품을 많이 먹이면 아토피 걸릴 일도 없고 성품이 온화해지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심정도 길러지게 되지요. 우리 발효 음식을 자주 먹는 것과 `더 비기닝'의 채식 식단은 모두 좋은 식습관이네요.”

 


[그집 이야기]

 

식물성 재료 본연의 맛·풍미 살려 '채식에 대한 거부감' 없앴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식물성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비건(vegan) 레스토랑인 `더 비기닝(The beginning)'은 채식주의자들만을 위한 식당이 아닌, 채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채식에 대한 `첫 추억'을 드리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또 제 이름을 걸고 처음 개업한 식당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인천 개항로에 있는 특별한 레스토랑 `더 비기닝' 임세진 대표는 채식을 지향하지만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말하는 `비건'은 아니다.

“아내가 결혼준비를 하면서 자연식물식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같이 채식을 하게 됐어요. 배부르게 먹으면서 몸이 좋아지고 속도 편해지는걸 느끼게 되니 채식이 정말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고기를 가끔 먹지만 아내는 육류 특유의 향에 몸이 거부감을 느껴 못먹을 정도로 비건에 가까워졌어요.”

임 대표는 부산이 고향이지만 인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내를 만나 인천에 자리 잡았다. 하루에 고기를 두 번씩 먹을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지만 아내를 따라 비건 식당을 다니면서 인천에 비건 레스토랑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인천에 비건 카페는 몇 군데 있었는데 비건 전문 음식점은 없었기 때문이다.

“제 전공분야인 이탈리아 음식을 기본으로 하려는데 파스타나 리조또 등에 `해산물과 고기를 안 써도 될까', `치즈, 버터 없이 맛이 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하지만 재료는 철저하게 육류를 제외하고 샐러드는 새싹, 토마토, 오이 등 식물성 재료본연의 맛을 살리고 레몬과 견과류로 풍미를 더 했어요. 크림파스타와 리조또의 우유는 두유로 해결하니 오히려 `비법'이 됐어요.”

임 대표는 어릴 때부터 혼자 음식을 해먹으면서 요리와 친해졌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모님께 요리사가 꿈이라고 말한 뒤 요리학원을 다니고 고3때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려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소스 만들기, 재료 손질하기 등을 차례로 익혔다.

“군대에서 간부식당 취사병으로 일하며 음식솜씨가 많이 늘었어요. 전역하고 요리를 직접 만드는 레스토랑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가는 곳마다 특징있는 레시피를 제 것으로 만들고 그곳에서 배운 요리를 응용해서 빼거나 더하거나 변경해서 완성한게 저만의 레시피가 됐어요.”

임 대표는 처음부터 개항로를 염두에 두고 음식점 자리를 찾았는데 우연히 백반집이었던 이곳을 보고 혼자 요리하고 서빙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맞춰 주방구조도 바꾸고 동선을 조절해서 테이블을 배치했다.

“지난해 7월 오픈했는데 처음에는 하루에 한두명만 오신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SNS를 통해 알려지고 입소문이 나면서 `비건 식당이네'하며 찾아오시거나 `아 여기가 거기구나'하고 오시는 분도 많아요. 일산이나 서울에서 오신 분들 가운데는 `멀리서 올 만하네요'라고 하시면 뿌듯하죠.”

테이블은 3인석 2개, 4인석 3개가 있다. 걸어서 1분 정도 걸리는 애관극장 앞 경동주차장 1시간 사용 쿠폰을 제공한다. 010-8748-0619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 버섯샐러드

 

`더 비기닝'의 식전 음식. 구운 버섯에 발사믹 소스와 간장으로 맛을 냈다. 콩으로 만든 비건 치즈를 뿌리고 신선한 야채를 얹은 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로 향을 더했다. 샐러드를 애피타이저로 하고 파스타 또는 리조또를 취향에 따라 주문한 뒤 칠리 가지 튀김을 함께 먹으면 이 집의 메인 메뉴를 코스요리처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 버섯 크림 보리리조또

특이하게 백미가 아닌 보리를 이용한 리조또라 식감이 독특하다. 얇게 썬 마늘을 튀겨 넉넉하게 얹은 뒤 두유로 만든 크림소스 베이스와 트러플 오일을 곁들여 버섯 넣고 끓인 깨죽맛도 살짝 느껴진다. 초록색의 루꼴라를 얹어 싱그러움을 더했다. 두유 크림소스와 트러플 오일이 함께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이 맴도는 일품요리다.

 

 

 

※ 매콤 빠네파스타

기본 파스타에 두유로 만든 크림소스를 듬뿍 뿌렸다. 항산화물질과 다량의 칼슘을 함유한 브로콜리와 함께 비타민C의 함량이 높은 붉은 피망과 노랑 피망을 푹 삶아 곁들였다. 이탈리아 빵인 `빠네'가 안에 있는 소스를 머금어 부드러워져서 먹기 편하다. 파스타를 먼저 먹은 뒤 빠네를 먹기도 하지만 칼로 자른 빠네와 파스타를 한입에 먹어도 그만이다. 청양고추를 살짝 곁들여 느끼함을 잡았다. 이 집은 어린잎, 바질 등 프레시 채소는 농장에서 일주일에 2차례 정도 직접구매하기 때문에 싱싱함을 유지한다.

 

 

 

※ 칠리 가지 튀김

비건 레스토랑인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 바삭하게 튀긴 가지에 대파와 마늘을 콩 식용유로 은은하게 볶아서 향을 낸 뒤 섞어 매콤한 칠리 소스를 베이스로 버무린다. 어린 새싹 등 신선한 야채를 얹어 푸른 빛의 청량감도 살렸다. 몸에 좋은 영양식이지만 물컹한 식감 때문에 꺼리던 사람도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며 짓무르지 않고 부드럽게 튀긴 가지를 이곳에서 처음 맛본 사람들도 있다. 원래 준비시간이 많이 걸려 저녁에만 올리는 메뉴였는데 찾는 손님들이 많아 점심메뉴로 추가했다. 이 집의 모든 메뉴는 직접 담그는 피클과 청양고추장아찌가 맛을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