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곧 삶을 성찰하는 시간
▲ 류인채 지음 천년의시작136쪽, 1만원

"제게 달팽이 같은 입술과/ 볕 한 뼘만큼의 그늘을 주소서/ 느릿느릿 이 등짐 한 채 지고/ 먼 하늘까지 무사히 건너게 하소서" (시인의 말 5쪽)

시집 <계절의 끝에 선 피에타>는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곧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라는 역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적 사유의 장이다.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려는 시인의 시적 태도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고광식이 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시인은 "세계를 만나고 알아간다는 것도 감각에 의해서"라고 여기며, "세계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기쁨도 감각 처리 과정을 거쳐야 분명해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감각을 성찰하여 삶을 안전하게 유지하고자"하며 감각이야 말로 "삶의 장애 앞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에너지"라 여긴다. 같은 맥락에서 시인은 고통, 쾌락, 자극 등을 수용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삶의 모든 요소들을 감각으로 전환하여 읽어내려는 태도를 보여 준다.

요컨대 시인은 온몸으로 전달되는 감각을 재구성하여 자신을 성찰하는 기제로 삼는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시간의 근원적 의미를 성찰하여 환원론적 시간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통해 실존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도모한다.

류인채의 이번 시집은 궁극적으로 신의 존재를 통해 유한의 삶이 어떻게 무한성으로 확장되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문학 텍스트이자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게끔 하는 문학적 창으로 기능한다.
공광규 시인은 "류인채는 만물을 향해 오감을 열어놓아, 인생의 늪을 걸어본 사람만이 젖은 발이 무엇인가 안다는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고 말했다.

류인채 시인은 충남 청양 출생으로 인천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지용과 백석의 시적 언술 비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받았다. 2014년 제5회 <문학청춘> 신인상 수상, 2017년 제9회 국민일보 신춘문예 대상 당선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소리의 거처>와 <거북이의 처세술>이 있다.

2014년 제26회 인천문학상을 수상한 뒤 현재 인천의 순수문예지 <학산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인교대, 성결대, 유한대, 인천시교육청 평생학습관 등에서 시와 글쓰기와 자서전 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