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일어판 현지 출간 … "인권·보편적 가치 담았기에 가능"
"현재 한일관계서 더욱 의미 … 전쟁 참혹함 생각하는 계기됐으면"

[이옥선 할머니 삶 그린 '풀' 김금숙 작가]

 

"일제강점기 여성의 아픔을 그렸습니다. 젠더, 차별, 트라우마를 안고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품입니다."

김금숙(48·사진) 작가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그린 장편 만화 '풀'이 내년 1월 일본에서 출간된다"며 "할머니는 만 16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에 살다가 5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쟁과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라고 밝혔다.

그는 "'풀'에서 잔혹하고 폭력적인 상황은 손이나 발, 나무나 바람 등으로 다른 이미지로 표현했다"며 "그런 장면을 직접적으로 그리면 독자들이 폭력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풀' 일본어판 출간은 이케다 에리(池田惠理)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 명예관장 등이 출판위원회를 꾸려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출판위원회는 값을 낮춰 책을 더 많이 보급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일본 출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의식 있는 일본 시민들이 풀 출간에 앞장서고 지원했습니다. 두 나라만의 문제를 넘어 인권과 보편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현재의 한일 관계에서 풀 출간은 더욱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한일 관계의 장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작가는 1994년 대학 졸업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조각가·만화가로 20년 가까이 활동했다.

성남문화재단이 기획한 독립운동가 웹툰 참여작가인 그는 2012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아버지의 노래'로 데뷔해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 발달장애 뮤지션 이야기 '준이 오빠' 등 일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꾸준히 그려내고 있다.

'풀'은 영어, 프랑스, 이탈리아어 등 7개 언어로 번역돼 해외에 출간됐다.

또 프랑스 진보 성향 일간지 '휴머니티'가 주는 '제1회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이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비밀로 간직하고픈 마음속 이야기를 해 준 이옥선 할머니에게 감사드립니다. 세계인들에게 아픈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데 한몫을 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독립운동가 웹툰 '시베리아의 딸, 김 알렉산드라'의 주인공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애쓴 인물이라고 했다.

"김 알렉산드라는 그 당시 남성위주 사회에서, 이국땅에서 3개 국어를 하며 노동자들의 연대를 위해 일했습니다. 노동자의 딸이자 노동자였습니다. 또 국적·민족·인종·남녀를 뛰어넘은 국제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또 엄마로, 혁명가로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김금숙 작가는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고 박완서 작가의 소설 '나목'을 만화로 그린 책이 곧 나옵니다. 나목은 한국전쟁 이후 한 예술가를 통해 성장하는 청춘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작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남=이동희 기자 dh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