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완장'과 '갑질'은 어원과 의미가 다르지만 유사한 측면이 많다. 완장(腕章)은 사전에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띠'라고 표기돼 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는 그 본질을 함축적으로 담은 귀절이 있다. 

'동네 건달인 종술은 저수지 관리인이라는 완장을 찬 뒤 안하무인이 된다. 낚시질하는 사람들에게 기합을 주고, 몰래 물고기를 잡던 친구와 그 아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읍내에 갈 때조차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권위주의 시절 등을 거치면서 완장은 우리에게 특이한 존재로 다가섰다. 그것은 차기만 하면 멀쩡하던 사람도 돌변하는, 야릇한 것이어서 인간관계와 사회를 훼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날에는 일제의 앞잡이가 된 한국인 순사, 한국전쟁 당시 잡자기 좌익이 된 사람, 학교 정문에서 복장검사를 하던 규율부 학생 등이 '완장'의 동의어처럼 여겨졌다. 좀더 시기를 좁히면 귀족노조 간부들까지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완장이라는 말이 잘 쓰이지 대신 '갑질'이 대체재로 등장했다. 갑질은 원래 사전에 없던 신조어(新造語)다. 권리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갑(甲)'과 비하하는 의미가 강한 우리말인 '질(행위)'이 절묘하게 합쳐져 강자가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을 뜻한다. 

아르바이트 등으로 '을(乙)'의 위치에 서본 경험이 많은 청년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말은  2013년쯤 인터넷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반짝했다가 곧 사라지는 유행어와는 달리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대화에서는 물론 신문과 방송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절정을 이루더니 최근에는 공식 용어로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제정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갑질금지법'으로 불리며, 정부 국민신문고에는 아예 '갑질피해 신고센터'가 만들어져 있다. 새로 나온 사전에도 버젓이 등재돼 있다.

갑질로 망가지는 사람을 수없이 봤음에도 갑질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 특이하다. 학습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주 찝찝한 느낌을 주는 이 말이 언제쯤 사라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