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추홀구 향토문화유산위원회에 참석했다가 '전도관'이 곧 헐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류상 모든 절차가 끝났다. 숭의동 전도관구역 재개발주택조합이 구성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도관 철거는 '설마'했다. 전도관은 인천시민에게 크게 두 갈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나는 종교단체로서의 전도관이다. 박태선 장로의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현재의 천부교)가 1957년 10월 숭의동 109번지 일대 언덕에 전도관을 세웠다.

한때 한 집 건너 한 집은 전도관 표찰이 붙어 있을 만큼 교세가 엄청났다.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방팔방 산 밑에서 개미처럼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건축물로서의 전도관이다. 언덕 위에 길게 놓인 전도관은 비록 3층짜리였지만 시민에게 '웅(雄)하고 장(壯)한' 건축물로 기억된다. 납작 엎드린 주변 가옥들 풍광에 막강한 신흥 종교의 신비감이 더해져 실제보다 크게 다가왔다. 예전에 인천 앞바다 섬에서 육지로 들어올 때, 지금은 사라진 선인체육관과 더불어 전도관의 자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랜드마크였다.

전도관 동네는 인천에서 전국체전이 열렸던 45회(1964), 59회(1978), 64회(1983), 80회(1999) 대회 때마다 그 모습이 바뀌었다.

본부석에서 바로 코앞에 보이는 동네였기 때문에 인천시 주도로 집 고치기 운동을 펼쳤다. 몇 차례 걸쳐 화장은 짙게 했지만 굵게 패인 주름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동네는 낡았고 집들은 비었다. 종교 문제를 떠나 공간에 대한 의미 조명 차원에서 전도관 철거에 대해 지역사회의 논의 과정이 생략된 것이 아쉽다. 요즘 인천은 시민의 추억과 정서가 담긴 근대문화(산업)유산 건축물의 철거가 '어' 하는 순간 초전도(超傳導) 현상처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