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핸드폰에 칩을 넣었다며 계속 핸드폰을 바꾸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한다며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생각 혹은 신념을 흔히 망상이라고 한다. 이런 망상은 정신이 좀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극심한 불안 상태에 빠지면 망상 체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

프로이트는 불안의 원천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불안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직장에서 해고되고 아내는 큰 병이 났으며 아들은 돈을 훔쳐 가출하는 일이 연속으로 벌어졌다고 해보자. 그는 혼란에 빠져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과 세계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왜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혼란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는 망상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망상 체계가 완전히 형성되고 나면 환자는 더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훨씬 더 침착해진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 체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설명이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채 망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자는 자신에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시련의 원인이 결국 자신이 신에게 선택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선택된 자라는 믿음이 생기고 난 후 그는 고통 속에서도 모든 시련들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불안의 두 번째 원천은 내부에서 오는 불안이다. 외부에서 오는 불안은 그 불안의 근원을 피하면 된다. 불안의 장소를 안 가거나 불안을 주는 사람을 안 만나면 된다. 물론 외부에서 오는 모든 불안의 근원을 제거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에 비해 내부에서 오는 불안은 피할 수가 없다.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내부로부터의 위협은 어딜 가든 항상 존재하고 따라서 벗어날 수 없다. 내부에서 오는 위험이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나 충동 같은 것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마음은 살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내부의 위협적인 위험을 내부에서 외부 세계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투사다. 내부의 정신적 문제들을 외부 세계로 투사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당분간이다.

투사는 정신이 세계와 맺는 일상적인 관계의 일부다. 투사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용하는 방어 기제 중 하나다. 투사는 우리가 주변 세계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모든 편집증적 심리 상태에 깔려 있는 기제이기도 하다.

내부의 위험이 투사된 외부 세계의 대상들이 이제 점점 위협적인 존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에 대한 격렬한 증오와 분노를 가진 딸은 그것을 견딜 수 없어 외부로 투사한다. 딸의 증오와 분노가 투사된 세상은 이제 딸에게 위험하고 적대적인 환경으로 바뀐다. 왜냐하면 격렬한 증오와 분노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딸은 세상이 혹은 사람들이 자신을 박해하고 공격하려 한다고 믿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주변 세계에 불길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위협이 사라지고 정상적인 상황이 재개되면 대체로 사람들은 쉽게 균형을 회복하고 현실과 정상적인 접촉을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망상 그 자체는 질병이 아니라 자신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자신의 세계가 의미를 잃어가며 자신의 세계와 의미 있는 접촉을 잃어버릴 때 파괴되는 세계를 재건하려 한다. 그렇다면 망상은 긍정적 증상인가. 망상은 내부에서 일어난 혼란의 표현으로 그 사람의 위급한 절박한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