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어릴 적 조기잡이가 한창인 봄철이면 집집마다 조기를 짝으로 사다가 말리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조기는 아주 흔한 생선이었다. 말린 조기를 연탄불에 구워 밥반찬으로 맛있게 먹던 기억이 새롭다. 그 무렵 시내 곳곳엔 '연평도 명물' 조기를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연평도 앞바다에 조기 파시(波市)를 이뤄 조기를 싸게 사서 먹을 수 있다며 즐거워했던 어른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파시는 풍어기에 열리는 생선시장을 일컫는다. 어장(漁場)에서 어선과 상선 사이 어획물을 매매하는데, 그 지역(바다)을 파시라고 했다. 규모 확대에 따라 뱃사람과 상인 등을 상대로 한 음식점·숙박·위락시설 등이 어장 근처에 만들어져 활기를 띠었다.

구한말 이후 조기철만 오면 연평도 일대엔 황해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 등지 전국 배 수천척이 몰려들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파시를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어부들은 조기를 잡으면서 섬에 5~6주 동안 머물렀다. 음식점과 유흥업소 등이 문전성시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당시엔 '지나는 개들도 돈을 물고 다닌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목에도 오르는 등 '연평도 조기 파시'는 유명세를 떨쳤다. 하나 이 파시는 1960년대 말에 접어들어서면서 시들해졌다. 점점 조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1980년대엔 조기 대신 꽃게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젠 연평도를 생각할 때 '꽃게'를 뺄 수 없다. 아울러 연평해전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도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북한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놓여 있다. 섬엔 연평피격 현장을 보존하고, 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여기서도 분단의 아픔이 하릴없이 느껴진다.

"연평도에 평화가 빨리 깃들어 남과 북이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해 조기 파시 전성기를 되찾아야 합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달 28일 연평면사무소에서 열린 주민간담회를 통해 한 말이다. 남북 평화를 이뤄내야 연평도가 살아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도 역시 먼저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의 언급 속엔 '남북 평화'에 대한 갈망이 켜켜이 배어 있는 듯하다. 그렇다. 지난해부터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 무드'를 조성한 일은 특히 인천으로선 큰 기대를 걸게 한다. 서해5도와 강화 등 북한과 맞닿은 인천은 박 시장 말처럼 평화를 절실히 원한다. 가식적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바란다. 그래야 파시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든 뭐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