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귀절 쓰면 한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사랑스런 이에게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의 젊은 시절은 숱한 편지로도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지' 못해 쓸쓸했다. 나를 정직하게도 외롭게도 만들어 주었으나 충만한 행복감을 주었던 이에게 쓰는 편지는 마음이 아팠다.

스마트폰에 점령된 이 시대는 좀체 편지지 앞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를 그리는 아릿한 감정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편지를 떠올리면 애틋한 추억 같은 것들이 떠올라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강렬히 느끼게 해주기도 하는데, 누군가에게 애써 편지를 써보려고 하면 한 문장도 써지지 않아 슬픔이 깊어진다.
나이가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해마다 조금씩 쓸쓸해지는 건 한 구절 쓰면 한 구절 와서 읽어줄 그대가 서서히 내 곁에서 멀리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걸… 그것이 어쩌면 스마트시대에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별도 감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움은 이별을 전제로 하고, 나의 초로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은 이별과 통하고, 불후의 빛나는 러브스토리는 모두 눈물겨운 이별을 딛고 세상을 울린다. 그래서 편지는 누군가의 이별이며 그리움이며 간절한 사랑이다. 부치지 않더라도, 매일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보다 더 행복한 건, 내 마음을 읽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다소 외롭더라도, 나를 읽어줄 누군가가 지금 내 곁으로 오고 있다고 믿어보자. 지금은 깊은 가을이니까. 이 가을에 써보는 한 통의 편지는 가식을 입지 않아 아름다울 것이다.

/권영준 시인·인천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