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노우 화이트'
동화와 달리 '능동적 여성' 그려냈지만
외모 지상주의·남성 우월감 못 벗어나
▲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아름다운 백설공주는 백마 탄 왕자와 행복 했답니다."

디즈니 공주 시리즈의 주된 서사는 예쁜 얼굴 하나로 수동적인 삶을 살던 여성이 남성에게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확고한 성차별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탄생해 오래도록 읽힌 동화 백설공주를 '여성의 시각에서 현대판으로 재해석했다'는 영화 개봉 소식에 반가움과 기대가 컸다.

그러나 영화공간주안에서 상영한 안느 퐁텐 감독의 '스노우 화이트'에서 원작의 봉건주의를 뛰어넘는 해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존과 다른 점이라곤 몰랐던 욕망에 눈 뜬 클레어(백설공주)가 7명의 남자들과 차례대로 잠자리를 함께 하거나 성적 교감을 나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내용이 전부다.

클레어는 "더 즐기고 싶어요. 잘못된 거에요?"라며 당당히 욕구를 해소한다. 이런 면에서 항거 불능 상태로 누워있는 백설공주에게 키스하는 추행을 서슴지 않았고 성폭력으로 형성된 관계를 행복이라는 결말로 맺어주는 동화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여성을 표현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클레어가 7명을 쾌락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예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눈처럼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순수한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끊임없이 묘사된다. 빼어난 외모 말고 그녀가 이룬 것은 없다. 그저 얼굴을 무기로 남성들을 유혹하고 그녀가 원하는 성적 판타지에 도달한다. 영화는 과거의 진부한 외모지상주의를 통렬히 꼬집기는커녕 '예쁘면 만사 오케이'라는 영원불멸의 태제로 정립해 버렸다.

영화는 백설공주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 우월감에서도 한 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계모에서 비롯된 위기의 순간에 클레어를 구제하는 건 개연성 없이 갑자기 나타난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스노우화이트는 백설공주보다 더 나쁜 백설공주를 써 내려갔다. 차라리 삼류 에로 영화를 표방한 '성인판 백설공주'라고 솔직했다면 감독의 진심에 조금은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사진제공=영화공간주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