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 나눠먹기식 운용 지적
▲ 30일 인천경찰청 대회의실에서 경찰과 인하대 법학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정의롬 부산외대 교수가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운용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범죄 피해자를 보듬기 위해 조성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중앙부처들의 나눠먹기식 예산으로 전락했다.
정작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경찰에 배정된 예산 비중은 1%대에 그쳤고, 전체 기금 상당 부분이 간접 지원 예산으로 책정되는 등 비효율적 기금 운용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의롬 부산외대 교수는 30일 인천경찰청에서 '국민 인권 보호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경찰 개혁 방안'을 주제로 연 학술세미나에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목적에 적합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거나 절차상 문제로 매우 비효율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운용 개선 방안을 발제한 정 교수는 기금을 사용하는 부처의 예산 배정액과 사업 내용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그는 "2017년 부처별 기금 사용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842억9500만원 중 법무부 42.7%, 여성가족부 34.4%, 보건복지부 21.7% 순으로 예산이 배분됐다"며 "경찰청에 배정된 예산은 1.2%(10억7100만원)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조치는 피해 발생 초기에 제공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이를 위해선 경찰 단계에서 제공될 수 있는 사업의 비중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중앙부처에서 집행하는 예산 대부분은 직접적인 피해 지원보다는 지원·상담기관 운영비용으로 쓰여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치료비·긴급생계비 지원 사업의 경우 경찰이 아닌 검찰에서 집행을 하다 보니 신청부터 지급까지 평균 30일에서 최대 4개월이 걸린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경찰에서 상담을 받은 뒤 검찰에 출석해 재차 피해 진술을 해야 하는 절차 탓에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실질적 피해 지원을 위해선 수혜자 중심의 직접 지원 사업 비중을 보다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개선 방안으로 기금 재원 확대와 사업 운영 주체 조정, 기금 관리·운영 일원화 등을 함께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예람 경찰대 교수도 "주요 선진국에선 경찰을 중심으로 긴급성이 요구되는 피해자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치료비와 생계비, 장례비 등 피해자에 대한 모든 경제적 지원 예산을 검찰에서 집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태연 법무법인 참본 변호사는 "경찰은 사건을 송치하면 그만이고, 검사는 기소하면 그만이란 시각을 갖고 있다 보니 피해자 지원의 공백이 생긴다"며 "형사 절차 전반에 걸친 통합적 피해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철저히 피해자 수요에 맞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