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몬드'
관계 객관적으로만 보는 주인공
공감능력 떨어지는 현대인 빗대
▲ 연극 '아몬드'의 한 장면 /사진제공=김솔


"뇌 안의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가 너무 작아서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대."

10대 청소년 윤재는 웃는 법도, 눈물을 흘리는 법도 모른다. 윤재에겐 헌책방을 운영하는 엄마와 할머니가 세상의 전부다. 엄마는 윤재에게 상황별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교육하고 할머니는 손주를 '나의 예쁜 괴물'이라고 부른다.

눈 내리는 성탄절 이브, 세 식구는 만두를 먹으러 나갔다가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할머니와 엄마가 습격을 당해 죽어가는 현장을 눈앞에서 보고도 윤재는 외마디 소리조차 지르지 않는다.

24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아몬드'는 손원평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이다.
온 세상을 처참히 잃은 그에게 '감정 불능'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러나 너무나 객관적으로 인간관계를 바라보고 상황을 파악하는 윤재는 역설적이게도 관객들에게 감정의 극대화를 가져다준다. "이럴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라고 담담히 묻는 윤재에게서 그의 고통이 두배 세배로 전달되는 것이다.

윤재는 상처투성이인 친구 곤이와 밝고 유쾌한 친구 도라, 위층에 사는 빵집 아저씨와 함께 감정을 익히며 성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공감불능 시대의 현대인들이 타인의 상처와 외로움, 희로애락에 다다르는 일이 얼마나 거대한 여정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 부평문화재단은 윤재의 삶에 대한 생각과 물음에 따른 변화를 피아노와 현악기 라이브 연주로 표현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