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 노동자 … 부끄럽지 않은 삶 자랑스러워"


▲ 26일 연수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을 주제로 열린 2019년 인천 민속 문화의 해 특별전의 첫 갤러리 콘서트에 주인공으로 나선 이총각(왼쪽) 선생이 동일방직 여공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 갤러리 콘서트에 사회로 나선 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 이총각 선생

▲ 한은지 감독 '푸르른 날에'

언니다니던 동일방직 18세 입사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 바라보며

남성 전유물 노조운동 뛰어들어

알몸시위 동료 옷보며 펑펑울어

평생 동지와 함께 살아갈 것 다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당당한 선언이다. 지금은 당연시 되는 이 울림이 불과 30년 전에는 용기와 각오가 없었다면 섣불리 뱉을 수 없었다.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을 주제로 한 2018년 인천 민속 문화의 해 특별전의 첫 갤러리 콘서트 주인공은 동일방직 전 노동자로 인천 노동운동사의 대모인 이총각 선생이다.

'동일방직 노동조합의 파업과 방직공장 여공의 삶'을 약 한 시간 넘게 회상한 이총각 선생은 과거의 나를 투영하며 외친다. "부끄럽지 않은 삶, 그래서 자랑스럽다"라고. 갤러리 콘서트를 통해 독립영화 '푸르른 날에'도 만날 수 있었다.


홀로 무대에 앉아 가수 남궁진영이 무심한 듯 기타를 튕기며 자작곡 '월화수목금토일'을 노래한다. 쳇바퀴 같다는 노동의 시간,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이 되는 무의미한 노동의 삶을 일깨우듯 노래가 흘렀다. 그리고 인천콘서트챔버 이승묵 대표의 사회로 이총각 선생이 성큼 무대 위로 올라섰다.

아직 이 사회는 '노동'이란 단어에 콤플렉스가 있다. '레드'와 노동은 맞닿았다는 무시무시한 선긋기에 지금도 선뜻 노동이란 단어가 쓰이지 않는다. 노동절은 지금도 '근로자의 날'로 포장돼, 노동의 가치를 사용자가 허(許)하는 조건에서 이루려 틀에 가둔다. 왜 아직 노동을 삶으로 여기지 않는 걸까. 법과 규정이 정하는 노동이 이뤄지는 것이 싫어 줄 것 덜 주고, 가진 것 뺏으려는 누군가의 심보가 작용하는 것일까.

그래서 갤러리 콘서트의 첫 주인공인 이총각 선생을 통해 노동자 세상인 '인천'의 의미를 되새겼다. 동일방직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똥물 투척 사건을 당했고, 몸뚱이 하나로 군화 발에 저항했지만 여전히 해고 노동자인 이총각 선생.

이 선생의 말투는 톡톡 튀었고,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실리며 청중의 가슴에 '노동' 이란 정의를 심어놓았다.

이 선생은 동일방직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을 "여기가 산 지옥이구나"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동구의 대공장인 동일방직. 이 회사는 1934년 일본의 동양방적으로 출발해 1966년 동일방직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일제강점기 인천 노동운동의 효시와 같은 곳이요,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 여성 노동운동의 횃불을 든 곳이다.

이 선생은 4살 때인 1951년 엄마 등에 업혀 태어난 황해도 연백에서 인천 화수동 대건학교 인근으로 피난해 터를 잡았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입고 먹을 것 없던 그 때. 두 끼 먹기도 버거웠다. 언니가 다니던 동일방직에 어렵사리 조기 한 상자 뇌물(?)로 들어갔다. 그 때가 1966년 1월18일 꽃다운 18살 때였다.

크기도 큰 공장. 아귀처럼 입을 떡 벌린 곳의 속살은 엄청났다. 쉼 없는 기계 소리와 벽마다 켜켜이 쌓인 먼지와 솜 타래가 가득했다. 일제잔재로 일본말이 오갔고 호루라기 소리로 기계처럼 일사분란 하게 남성 조장이 여공을 옥죄었다. 야근하고 잘 때면 눈가에 솜이 쌓였다. 그래서 항상 몸 곳곳의 솜을 없애려 스펀지를 몸에 지녔다. 반복되는 3교대로 제 때 먹지 못했기에 지금도 만성 위장병에 시달린다는 이총각.

1969년 가톨릭 노동 청년회 활동을 하던 동료 언니들에 이끌려 처음 그 곳을 찾았고, 이내 "나만 어려운줄 알았더니 처지가 비슷했다"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어용으로 남성의 전유물 같던 노조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선생은 당시의 어려움과 어용 노조에 몸을 담았던 '그들'의 이름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리에서 지우지 않았다. 그 속에서 노조를 파괴하려는 남성 권력과 군화 발에 맞서며 똥물투척사건이 일어났고, 이총각이 잡혀 들어간 인천 동부경찰서를 향해 피 흘린 외침과 함께 스스로의 허울을 벗어던진 알몸시위가 벌어졌다. 그 두 사건은 지금껏 인천을 넘어 한국 노동운동사에 깊이 각인됐다.

이 선생은 "더워서 벗은 것도 있었겠지. 그런데 풀려나서 노조 사무실 앞에 왔더니 벗어놓은 신발과 작업복이 산처럼 쌓였어. 그걸 보고 한참을 펑펑 울었어"라고 말했다. 그때 동지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터다.

'인간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노조를 통한 삶의 변화.

해고된 허허벌판에서도 동료를 잃지 않고 후배와 관계를 맺으며, 이총각은 과거에 얽매인 게 아니다. 그는 오늘과 내일을 새로운 노동자의 벗으로 살아간다.

노동자의 버팀목인 이총각이 아닌, 이총각이 노동자에게 버티고 있단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다"라고 말하며, 오늘도 내일도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동지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18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후회 없이 당당하게 살겠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제 자신이 자랑스럽다"라고.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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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각 선생은 노동운동 수십여년 헌신
"이 길 걷기 잘했다" 소회

이총각은 1947년 11월19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1·4후퇴후 인천 화수동에 거주했다. 1966년 동일방직에 입사했다. 1977~1978년 2월 동일방직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똥물 투척 등 회사의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투쟁을 주도했다. 1978년 4월 해고 통지를 받았고, 그해 4월 26일 투옥돼 군사정권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다. 1982년 4월 인천교구 가톨릭 노동사목 실무를 담당하기 시작해 1987년 1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위원장이 됐다. 1991년 인천 청솔의 집 대표(현)를 맡고 있다.

이총각은 1993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97년 민주개혁을 위한 인천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01년 7월 인천 남동자활후견기관 관장으로, 2002년 7월 한국자활후견기관 협회 인천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했다.

이총각의 노동운동은 담담하다. 그러나 당차다. 그는 "이 길을 걷기 잘했다"고 과거의 자신을 다독인다. 그리고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단순히 일하는 기계가 아닌 나눔과 자유의 가치를 향유할 줄 아는 인간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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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지 감독 '푸르른 날에' 상영

'동일방직 똥물사건' 증거 사진, 관객에 긴 울림

갤러리 콘서트 도중 독립영화 한편이 소개됐다. 한은지 감독의 2018년 작 '푸르른 날에(사진·34분16초)'이다.
이 영화는 2017년 한국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독립단편영화 제작지원에 선정됐다.

영화는 1978년 여름 한국의 한 공장이 배경이다. 공장에서 재봉틀(미싱)을 돌리는 설란(주가영)과 그 공장 맞은편 사진관 석윤(감승민)이 영화 속 주요인물이다.

설란은 어느 날 불쑥 사진관을 찾아 "사진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설란 회사동료 몇몇도 사진관에서 사진을 배웠다.

힘든 노동만이 아닌 '취미' 생활이 있는 노동자로 삶을 인식하는 순간, 불순한 노동운동이라며 경찰이 찾는다.

이 영화는 1978년 '동일방직 똥물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그리고 그 증거가 된 단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한다. 이 사진은 기자도 경찰도 아닌 공장 맞은편 사진관 주인이 남긴 것이다. 처절한 노동탄압이 담긴 투박한 사진 한 장이다. 이 영화에는 고문도, 매질도 없다. 긴박한 순간 속 사진 한 장만이 영화의 마지막 울림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는 2018년 제6회 인천독립영화제 작품상에 이어 제39회 청룡영화제 단편영화상 본선, 제주여성영화제 단편경선부문, 제11회 진주같은영화제 일반단편섹션, 제7회 대구여성영화제 초청, 제9회 광주여성영화제 초청, 제2회 신필름예술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그해 KBS 독립영화관에 방송됐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사진제공=제주혼듸독립영화제·한국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