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학교 다니던 8살 여아 사라졌는데 단순 실종
실종 5개월 지나 치마·책가방 등 유류품 발견됐는데도 가족에 통보조차 안 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생'이 당시 '가출인'으로 분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종 당일까지도 학교를 잘 다니던 만 8세 여자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데다 유류품까지 발견됐음에도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한 안일한 대처는 과거 경찰의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24일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에 따르면 1989년 7월 7일 낮 12시 30분께 화성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인 김모(8) 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당시 경찰은 김 양이 스스로 집을 나갔다고 보고, '가출인'으로 분류해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 양의 부모가 두 차례에 걸쳐 수사 요청을 했음에도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돼 지난 30년간 '콜드 케이스(장기 미제 사건)'로 경찰서 캐비닛에 처박혀 있던 배경이 됐다.

화성사건 수사본부는 과거 수사기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으나, 당시 경찰이 학교에 잘 다니던 나이 어린 학생을 '가출인'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양의 실종과 화성사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한 기록은 일부 남아있어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부연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김 양의 흔적은 실종 5개월여 만인 같은 해 12월 참새를 잡으러 나가던 마을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주민들은 김 양이 입고 있던 치마와 메고 있던 책가방 등 유류품 10여 점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경찰은 이 중 유류품 7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연구원)에 감정을 맡기면서도, 유류품 발견 사실에 대해 김 양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정한 유류품에서는 인혈(人血) 반응이 있었으나, 혈액형 판정은 나오지 않았다.

화성사건 수사본부 관계자는 "당시 경찰이 김 양의 가족들에게 유류품 발견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당시 수사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어서 이런 불일치에 대해 계속 확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화성사건 수사본부는 이춘재가 김 양을 살해한 후 시신과 유류품을 범행 현장 인근에 버리고 달아났다는 진술을 받아 수사 중이다.

그러나 이춘재가 지목한 장소는 실제로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와는 거리가 100여m가량 차이가 있고, 두 장소 모두 이미 아파트나 도로 등이 들어선 상태여서 김 양의 시신 수색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양의 가족들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달라는 뜻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